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SJ Mar 22. 2020

코로나로 완전히 달라져버린 스페인 일상

코로나, 국가비상사태, 그리고 자가격리


1월


중국과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 사람'인 나는 어느 정도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가 머물고 있는 산세바스티안은 스페인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처럼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곳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행히 인종차별 행위를 당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장소들은 비켜서 돌아다닌 것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무섭게 치솟아 오르는 한국의 확진자 수를 보며 가족과 친구들을 걱정했다. 스페인에도 며칠 뒤 확진자가 나왔지만 겨울 시즌이 여행 성수기인 작은 섬으로 여행을 온 다른 유럽인이었고, 2명 확진자가 나온 뒤로 상황은 잠잠했다.




3월


하지만 3월, 상황은 바뀌었다. 여전히 한국의 확진자 수도 오르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은 이웃나라 이탈리아의 상황이었다. 2월 마지막 주에 갑자기 확진자 수가 한 단계 오르더니 3월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결국 약 1주일 뒤 이탈리아는 봉쇄되었다.


유럽 연합으로 묶여 있는 스페인이니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이탈리아가 먼저 매를 두드려 맞은 것이고 곧 스페인도 확진자 수가 급속도로 오르겠구나 싶었다. 슈퍼마켓에 들려 쌀과 물을 여유 있게 사 두었다. 한국식품 온라인 마트에서 이것저것 식료품도 주문했다.


이탈리아가 봉쇄되는 그 시점부터 스페인의 확진자 수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처럼 확진자가 빠르게 파악될 수도 없는 곳이고, 마스크 보급률이나 위생관념도 떨어진다. 게다가 이 곳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볼뽀뽀를 인사로 하고 정말이지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코로나도 독감 중 하나일 뿐인데 왜 이렇게 유난이야?"라고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분명 한국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겠구나-싶었다.




3월 15일


스페인 정부에서 '국가 비상령'을 공표하고 15일간 슈퍼와 병원, 은행을 제외한 상점의 오픈을 금지하고 특정 이유 없이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탈리아처럼 재택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며칠 전부터 슈퍼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요 며칠 사이는 사재기 현상이 보이면서 휴지, 쌀, 파스타 면 같은 코너는 텅텅 비어있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물건을 사 가니 나도 괜스레 뭐를 더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귀리 우유가 다 떨어져서 슈퍼에 온 참이었다- 3월 14일의 슈퍼 방문기. 이 날 이후로 슈퍼도 외출도 한 적이 없다.



감자 고구마 양파 등 많은 구황작물, 야채 코너도 비었다. 사재기가 가장 심한 파트는 '휴지'였다


쌀은 미리 사 두었다 (저 옆에 쌀 봉지가 6개 더 있다)




마스크


위에 얘기한 것처럼 유럽은 우리나라처럼 마스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마스크는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착용하는 것, 혹은 공사장 등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끼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곳이다. 그러니 마스크 제조사나 공장 또한 우리나라처럼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도 미세먼지가 지금처럼 일상화되기 전에는 마스크가 이렇게까지 일반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편의점에서 여러 종류의 마스크를 진열하고 파는 모습은 불과 5-6년 전만 해도 지금 같지 않지 않았던가. 아무튼 여기서는 KF94 마스크 같은 것은 약국에서 구하기 거의 불가능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하기에는 배송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1월 말에 비상용으로 KF94급의 마스크를 3개 구매하였는데(더 많이 사기에는 가격이 좀...) 택배를 받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어떻게 할까 고민이었다.


사실 마스크를 구해도 그걸 쓰는 것도 문제다. 3월 첫 주 들어 확진자 수 증가가 심상치 않은데도 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전혀 볼 수 없다. 며칠 전 종합병원에 갔을 때도 마스크를 쓴 의료진 또한 하나 없었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마스크를 쓰면 오히려 오해를 받을 것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결국 나는 천 마스크를 만들어 쓰기로 했다. 비록 손재주가 꽝이지만 블로그를 좀 돌아다니며 글을 찾아보니 만드는 과정이 많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천 가게에 가서 겉감과 안감으로 쓸 천을 반마씩 떼 오고 집에 오는 길에 중국 가게에 들려 시침핀과 고무줄도 사 왔다. 그 외의 기본적인 바느질 도구는 가지고 있는 게 있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저녁밥을 먹고 도안을 뜨기 시작하면서 오늘은 마스크 한 개만 만들어보고 일찍 자야겠다 했는데 '이다음에 어느 부분을 바느질하는 거지?', '이게 어떻게 이 모양이 되지?' 고민을 하며 바느질을 마치고 보니 벌써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대충 4-5일에 걸쳐 마스크 10개를 완성했다. 마스크 필터나 정전기 부직포는 부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자가 격리가 시작되고 6일간 집에서 아예 나간 적이 없긴 하지만 슈퍼마켓에 식료품을 사러 다녀온 그에게 거리 분위기를 물어보니 "이제 30-40%는 마스크를 쓰든 머플러를 두르든 입을 가리고 다닌다"라고 한다.


그렇게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와중에도 다들 비상시 쓸 마스크는 어찌어찌 준비를 해두었나 보다.



비록 5분 채 안 되지만 집 밖으로 나섰던 마지막 날. 거리는 한산했다



잘 먹기



면역력을 키우려면 잘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우리는 집에서 엄청 잘 챙겨 먹고 있다. 스페인에 온 지 1년 하고 10개월, 근 한 달 동안 음식을 가장 잘, 그리고 많이 먹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렇게 확'찐'자가 되어가고 있다 (매일 30-40분은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고 있지만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수업



학원 수업은 이번 주부터 온라인 화상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몇 주 전부터 내가 코로나가 걱정된다고 할 때도 다들 여유만만이던 학원 사람들과 학생들은 결국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요 며칠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그래도 학원에서 많이 고민하고 준비한 덕분에 생각보다 수업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공부 의욕은 확실히 떨어져 있다.



20시



매일 저녁 8시, 사람들은 다들 테라스로 나온다. 누군가는 북을 들고, 누군가는 크게 음악을 틀을 스피커를 들고 테라스로 나온다. 다 같이 박수를 치며 이 시간을 맞이한다.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의미로 보내는 박수와 환호다. 박수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 건너편 건물에 사는 한 젊은 사람이 항상 "Animo todo!!(모두 힘내요)"하고 외친다.


상황이 아직 심각해지고 있는 스페인도, 이제 감소세에 있는 한국도,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조금 더 힘내야 하는 시간이다. 더 큰 아픔 없이 이 사태가 하루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가 놀러 왔다, 발렌시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