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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Mar 25. 2020

1년 전, 3월의 스페인의 기억

라스 파야스 축제로 시끌벅적하던 발렌시아



코로나 바이러스, 국가비상령으로 집콕 생활을 한 지 9일째. 어제는 8일 만에 집 밖으로 처음으로 나갔다. 테라스에서 보던 햇빛과 밖에서 온전히 맞는 햇빛은 완전히 달랐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면서라도 밖으로 나가는 거구나"싶었다.


한국에 살 때의 나는 하루라도 온종일 집에 있으면 기분이 우울해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의미 없이, 허투루 시간을 버린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도, 다이어리를 정리할 때도 집에서 하기보다는 근처 카페를 가서 하는 걸 선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에 가만히 앉아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때는 감히 이렇게 오래 집에만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보면, 내가 정말 이 곳에 머물면서 많이 바뀌었구나 싶다.


스페인 생활을 하면서의 에피소드, 소소한 추억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 여기에 쓰고 있는 일상의 기록은 1년 전의 이야기이다. 사진을 되짚어보며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1년 전의 일들을 추억하며 미소 짓고, 한참 고민하고 힘들어했을 때의 나를 지금에서야 토닥여주기도 한다.


1년 전, 2019년 3월의 일상은 매일매일이 반짝거렸다. 감정적으로는 조금 힘든 일이 있던 때였지만 발렌시아의 3월은 20일 동안 진행되는, 연중 가장 큰 축제인 Las Fallas(라스 파야스)가 있는 달이었기에, 나는 울적한 기분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었다. 







발렌시아의 겨울은 짧고 미지근하다. 3월이면 이미 완연한 봄 날씨를 느낄 수 있는 발렌시아. 심지어 어떤 날은 기온이 급격하게 올라 완전히 여름 날씨였다. -그 날은 민소매를 입고 나갔을 정도다- 사람들은 카페며 바의 테라스 좌석에 앉아 얘기 나누기에 정신이 없다. 라스 파야스 축제 동안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친구들과도 한껏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라스 파야스 축제가 시작됐다. 이 기간 동안 발렌시아는 매일매일이 축제다. 특히 라스 파야스의 하이라이트는 3월 16일에서 3월 19일로, 이 때는 매일 밤 큰 불꽃놀이가 이어지며 더 많은 사람들과 행사로 도시가 붐빈다. 다만 모여드는 사람처럼 소매치기들도 이 때는 발렌시아에 많이 오기 때문에 거리를 다닐 때 충분히 조심해야 한다. 또한 대중교통도 평소와 많이 달라지므로-시내 중심부는 아예 도로가 다 차단된다- 주의해야 한다.




큰 거실이 있는 친구의 집에서, 우리는 종종 모였다
정말 매일이 파티 같았던 3월





유럽 여행자가 다 모인 것 같은 3월의 발렌시아
밤에는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이 거리를 밝힌다
사람들은 전통 복장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매일 2시, 시청 광장에서는 Mascleta를 터뜨린다







발렌시아에는 'Casal(까살)' 문화가 있다.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그 까살 안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하며 그 공동체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북부에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으로 'Sociedad(소시에닷)'이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무척 일반적이었던 '반상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발렌시아의 대표 축제인 라스 파야스에서도 까살의 역할이 무척 크다. 까살마다 커다란 텐트를 설치해서 그 안에서 빠에야를 요리하고,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아침에는 팡파르 행진을 하고 밤에는 폭죽을 터뜨린다. 거리 곳곳에 설치되는 커다란 작품, 파야(Falla)도 각 까살에서 아티스트에게 투자를 하며 만드는 것으로 각 까살과 아티스트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주는 것을 넘어, 1등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멋진 Falla 작품들은 축제의 마지막 날 모두 불로 태운다. 파야가 불 속으로 사라지는 때 작품이 설치된 거의 모든 스폿에서는 불꽃을 쏘아 올린다. Las Fallas. 축제 이름의 의미 그대로 정말 이 축제는 '불의 축제'라고 볼 수 있다.







불꽃놀이는 축제 기간 동안 6번 있었다. 원래부터 불꽃놀이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나에게는 황홀한 기간이었다. 매일 친구들과 거의 밤새 놀고, 낮에도 축제를 즐기고, 다시 불꽃놀이를 보러 가면서 하루는 컨디션이 훅 떨어져 집에 빨리 들어가 쉬어야만 했지만 말이다. -이럴 때면 정말 내 체력은 이제 20대 때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구나 하고 느낀다- 내 몸 상태가 어떻든, 불꽃은 언제나 아름답다. 아무 조건도 고려하지 않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혹은 무언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선택해야만 한다면, 내 답안 중에는 '불꽃놀이 디자이너'가 들어가 있을 정도다.




다른 친구 집에서, 빠에야&칵테일파티



올해 라스 파야스 축제는 7월로 연기되었다. 3월 첫 주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Mascleta 행사 사진을 봤을 때는 "어어- 저러면 안 되는데. 코로나 엄청 퍼질 텐데"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행사가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내심 안심이 되면서도 1년 전의 즐거운 기억을 반추할 때면 왠지 나는 서러워질 때도 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이 유쾌하고 화려한 축제에 다시 가는 것을 기대하며.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루라도 빨리 사그라드는 것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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