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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Mar 26. 2020

1년 전 오늘, 3월의 공원 피크닉

마치 여름날 같았던 3월의 스페인 발렌시아



친구의 인스타 계정에 ‘1년 전’ 사진이라며 사진이 올라왔다. 2019년 3월 25일의 발렌시아는 마치 여름 같았다. 며칠간 날이 좋았던 터라 우리는 미리 피크닉 약속을 잡아 두었었고 뚜리아 공원에 나서니 여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 황홀한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약속된 시간에 모두가 모이는 일은 없다. 이미 반년을 같이 다닌 친구들이라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먼저 도착해서 메신저에 내 위치를 공유해두고 느긋하게 날씨를 즐겼다


우우웅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격하게 울린다. 오고 있다는, 혹은 곧 출발하겠다는 친구들의 대답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사이로 클라우디아의 위치 정보가 올라왔다. 여느 이탈리안 친구들과 달리 늘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는 클라우디아는 오늘도 나보다 한 발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포옹과 볼뽀뽀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논의했다. 준비해 온 깔개를 깔고 나니 곧 다른 친구들도 도착했다


곧 본국으로 귀국하는 친구가 둘 있었던 터라 아마 오늘의 모임이 모두가 같이 모이는 거의 마지막 날이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빠지는 사람 없이 모두가 모였다. 우리는 먹고 마시며 끊임없이 재잘댔다. 두 클라우디아는 갑자기 나무에 올라가고 싶다며 커다란 나무에 능숙하게 올라갔다






오늘은 각자 음식과 음료를 준비해오기로 했는데 나는 학원 수업이 끝나고 바로 여기로  터라 요리는 하지 못하고 슈퍼마켓에 들려 마실거리와 간단한 먹을 것들을 사 왔다. 슈퍼에서 이것저것  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서로 메뉴가 겹치지는 않았다


이 날 나의 최애 메뉴는 미아가 가져온 닭강정. 역시 치킨은 언제나 옳고 한식은 사랑이다. 매콤 달콤한 닭강정과 맥주의 조화는 아주 훌륭했고 덕분에 가장 먼저 매진되었다






인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 같이 모일 때면 어떤 순간은 다들 한 명의 이야기, 하나의 테마에 집중해서 얘기를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소그룹으로 나눠져서 얘기를 나누거나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보통 어학원에 오는 학생들은 단기로 머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






하지만 이 날 내 다리는 운이 좋지 못했나 보다. 햇빛이 생각보다 꽤 뜨거워서 에코백으로 무릎을 가렸던 터라, 햇빛에 살이 완전히 노출된 건 고작 15-20분 정도였는데 내 살은 숯불 위 고기처럼 아주 색이 바뀌어버렸다. 원래도 나는 살이 잘 타는 편이지만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무릎이 타 버린 건 충격적이었다. 이 경계선이 없어지기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덕분에 샤워를 하면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경계선을 볼 때마다 이 날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모쪼록 각자의 위치에서 알차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기를. 이 어려운 시기를 다들 무탈히 잘 지내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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