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그 봄의 기억

모든 것이 바뀌던 ‘설렘의 봄’

by BSJ



「새로운 추억이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아이폰에 알람이 울렸다. 평소에는 무시하던 아이폰 사진첩 알람이 오늘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메세지를 스윽 밀어 사진첩을 열었다. 2018년 봄, 설레고 찬란했던 2년 전 봄의 기억이 눈 앞에 들어왔다. 고민을 정리해가던 겨울을 지나 보낸 후, 그 해 봄의 나는 '나의 인생 3장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들떠 있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당분간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보낸 하루였다. 그렇다고 일을 설렁설렁 하지는 않았다. 출근 마지막 날까지 퇴근시간을 꼬박 채우다 못해 살짝 야근까지 하다 가는 건 세 번째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나는 매일 설레었고, 때로는 나의 이 공간에 남을 그대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2년 전 봄의 그 가득하던 설렘과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갔는지. 2020년 봄의 나는 집에 갇혀, 기운을 잃고, 때로는 알 수 없는 화를 느끼며 괴로워하고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다시 나에게 설레는 봄이 찾아오겠다. 2년 전 그 때처럼.





광화문, 벚꽃

괜시리 모든 게 더 예뻐보이는 봄이었다. 분홍 빛 꽃잎들이 활개치는 풍경을 볼때면 나는 어김없이 카메라를 켰다. 카메라 렌즈에도, 눈에도 한가득 찬 봄의 풍경이 황홀했다.





종로타워, 낮맥

그 전 회사에서는 가끔 낮에 반주를 해야 할 일도 있었는데, 이 회사에서는 유독 그럴 일이 없었다. 낮 반주가 무슨 말이냐. 퇴근 후에도 술을 마신 날이 많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 회사는 일이 너무 많았고 항상 내가 일에 100%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해야 했다.


동료 팀장님들에게 퇴사 소식을 전한 날, 이들과 대표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낮맥을 했다. 이런 낮맥도, 종로타워도 처음이었다. 종로에서 꼬박 8년을 채워 직장생활을 했는데 마지막이 되어서야 타워 위를 올라와 보는구나. 내가 늘 머물렀던, 애증의 종로 풍경을 감탄하며 내려다봤다.





고마운 나의 그녀들에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회사로 이직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랑 일하는 게 편한 거 같아', '아 20대 초반의 아이들과는 일 같이 못 하겠다' 하지만 내가 팀장을 맡은 팀은 나를 포함하여 여자 9명으로 이뤄진 팀이었고 우리는 참 치열하게 살았다.


참 어려움 많은 힘이었는데도 속 힘든 것도 잘 내색하지 않고 어리숙한 팀장을 늘 든든하게 지원해 준 그녀들과의 마지막 워크숍으로 중국 칭다오에 갔다. 평소보다 내 속을 아주 조금은 더 드러냈던 마지막 워크숍. 한 순간 한 순간을 모두 소중하게 담아두려고 안간 힘을 썼다.





작은 수술

아, 전신 마취를 하는 수술이었으니 '작은 수술'이라고는 볼 수 없으려나... 아무튼 마지막 출근 다음 날 수술을 하나 했다.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덜 쳐다보고 덜 열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했다. 일이 정말 몰려있을 때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들기도 했던 그 시절의 나는 어제로 끝났다. 느껴지는 '허전함'을 '홀가분함'으로 생각하고자 노력했다. 수술 후 고통은 참 괴로웠지만 말이다.





2주만의 바깥 공기

퇴원 후 집에서 회복기를 가지고 2주만에 제대로 바깥 공기를 쐬러 나왔다. 집 근처의 산책로를 따라 쭈욱 걸었다. 집에만 있는 동안 4월은 5월에게 바톤터치를 했고, 나뭇잎들은 그를 기념하려는 듯 초록빛을 선명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초록빛 나뭇잎이,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공기가 너무 좋아 행복했다.


그러고보면 스페인에서는 지금 50일째 집 안에만 있는데.... 저 때는 1-2주 집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옥같고 지금보다 더 지루하고 괴로웠던 것을 생각하면, 나는 여기에 와서 참 많이 바뀐 것 같다.






우리의 삶에 파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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