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있는 것에 대한 안정감

우리는 왜 그렇게 ‘유럽 여행’을 좋아하는가

by BSJ



참 부단히 유럽 여행을 했었다. 항공권을 살만한 돈이 모이면 나는 늘 유럽행 항공권을 샀다. 첫 유럽여행이 너무나 좋은 추억으로 남기도 했고, 갔던 곳은 또 가도 질리지 않고 더 좋았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매년 유럽여행을 갔었다


(물론 다른 곳들도 그렇지만) 유럽여행을 하면서 같은 도시를 두 번, 세 번 여행한 여행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음식’이 이유였고,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이유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이유였다


같은 곳을 여러 번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곳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고, 옛 여행의 추억을 반추하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서울의 어느 동네처럼 2, 3년만 지나도 거리가 바뀌어버리면 이렇게 몇 년 전의 여행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긴 어려울 텐데, 유럽의 거리와 건축물은 언제 다시 방문해도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 가게는 종종 바뀐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안정감을 얻는 걸지도 모른다. 모든 게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바뀌는 사회에서 떠나 변화가 더딘 곳의 그 풍경으로부터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10여 년 만에 두 번째로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그 옛 기억이 마치 며칠 전 일처럼 살아났다. 천천히 걸어가던 사람들, 그늘이 많던 거리, 시선만 올리면 바로 보이던 두오모 성당,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떠올리던 순간들, 그리고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순간들. 모든 것이 생생했다






나의 스페인 첫 거주지였던 발렌시아도 그랬다. E언니와 빠에야 가게를 찾아 헤매던 거리, 젊음이 가득했던 저렴한 호스텔 앞, 현지인들처럼 바닥에 앉아 맥주 한 캔 마시던 광장, 일상의 시간을 걸어가다가 나는 문득문득 옛 추억을 회상했다 -처음으로 우연히 호스텔 앞을 지나가던 날에는 사진을 찍어 E언니에게 보냈다-






나에게 이런 위안감을 주는 도시로 어찌 바르셀로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대학시절 첫 유럽여행 때 홀딱 반해버린 바르셀로나는 내가 가장 여러 번 여행을 간 곳이다 -한국에 살면서 이미 예닐곱 번을 갔다- 여행을 갈 때마다 새로운 맛집과 스폿에도 갔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구엘 공원은 매번 빼놓지 않고 들렸다. 활기찬 도시의 분위기에 잔뜩 고무되었던 그때가 떠오르며 늘 편안한 기분을 갖게 해 주는 곳이었다






어학연수 1년 차에는 ‘먼 타지에서 온 여행자’의 시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던 때라 지금의 나와는 차이가 았다. 이제는 늘 그대로 있는 유럽의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신기함과 감탄스러움은 사그라들었다. (일단 ‘여행을 떠난다=돈이 나간다’라는 생각이 강해져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나는 여행에 많이 ‘능숙’해졌지만 조금 더 순수하게 이 곳을 바라보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나도 유럽의 여느 건물처럼 변함없기를 바라게 된다. 어쩌면 내가 ‘어릴 적 갔던 유럽 도시를 다시 찾는 것’은 그 시절의 나를 느끼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4월 말. 예정대로면 나는 친구들을 만나러 런던에 간다는 변명하에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 계획이 무산됐다. 음식도 맛있지 않고 물가도 비싼 런던이라 처음에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주 목표였는데 여행 일자가 다가올수록 나의 ‘첫’ 유럽 도시였던 런던이 너무나 기대되었다 -엄연히 따지면 이제 영국은 유럽이라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일단 유럽이라고 치자- 코로나가 종식되고 런던으로 가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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