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고 싶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by BSJ
Takefue, Japan 2017



10월에 한국을 다녀온 게 마지막 여행이다


벌써 반년도 전이다. 그 사이 Zumaia, Pamplona, Hondaribia, Bayona를 다녀오긴 했지만 산책하듯 짧은 시간 잠시 거닐고 온 것이라 온전히 ‘여행’이라고 불러주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나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부른 이후 이렇게 여행다운 여행을 오래 하지 못한 건 처음인 것 같다. -5년 전인가 여행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1년간의 시절이 더 심했던가 문득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도 이렇게 여행을 못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 3월에는 스페인에 놀러 오는 친구를 만나러 바르셀로나에 갈 예정이었고, 4월 또한 친구들을 만나러 런던에 갈 예정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사실 워낙 많이 가기도 했고 친구를 만나러 가면 내 일정의 절반 이상은 ‘가이드’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느낌’이 많이 드는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르셀로나는 흥미롭고,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다-


하지만 ‘런던’은 ‘여행’으로써 꽤나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친구들을 만나러 가려는 거였지만 생각하다 보면 런던에서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더불어 두 번의 런던 여행에서의 즐거운 추억이, 특유의 분위기와 따뜻했던 날이 떠올랐다. 나의 첫 유럽 여행지였던 런던. 그때처럼 공원에 가서 풀밭에 털썩 누워 사진도 찍고, 미술관도 가고 싶었다. 그렇게 일상 속의 시간에서 틈틈이 여행 계획을 채워갔다




MACBA, Spain 2016



하지만 삶은 늘 계획과 다르게 흐르니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렇게 크게, 길게 지구를 점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의 상황이 심각할 때도, 유럽은 확진 케이스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급격히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우리는 모두 뉴스 앞에 굳어 버렸다


“다음에 만나. 우리”




Grand Canyon, USA 2017



집콕 생활도 어느덧 4주 차


그렇게 시간은 잘 흘러간다. 국가 비상령이 선포되고 자가격리가 의무화되면서 집콕 생활을 한지 어느덧 4주 차다. 그 기간 동안 밖에 나간 건 딱 한 번이었다. 바깥공기와 햇빛을 온전히 느끼는 10분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생활이 생각만큼 힘들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하루만 집안에 있어도 온 몸이 쑤시고 내가 하루를 알차게 쓰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해지고는 했다. 그런 내 모습을 알고 있는 오랜 친구들은 유독 나를 더 걱정했다


그래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영상을 편집하고, 간간히 게임도 하면서-10여 년 전 나를 폐인으로 만들었던 게임 ‘심즈’를 깔았다- 나는 이 불편한 기간을 불편하지 않게 잘 보내고 있다


그러다 밤공기가 전혀 춥지 않던 어느 날, 문득 내 안에서 사라졌던 기분이 되살아났다




Hoyeonjae, Korea 2016




그것은 설렘. 여행에 대한 설렘


가끔 지인들에게 “10여 년 전으로 내 감정이, 감성이 돌아가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하곤 했다. 13년 전 첫 유럽여행을 하던 그때의 나는 모든 게 너무 신기하고 즐겁고, 길을 잃어 삽질을 해도 마치 모험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여행은 그 하루하루가, 한 순간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많은 여행을 해오면서 나는 여행에 ‘능숙’해졌지만 그 시절 같은 ‘설렘’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나는 여전히 여행이 좋고 즐거웠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렘은 느껴지지 않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묘한 느낌 말이다-바이킹을 탈 때처럼 심장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런데 그 느낌이 아주 오랜만에 찾아왔다.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러면 그 시절의 나처럼, 모든 것을 다 반짝이던 눈으로 바라보던 그때의 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기에, 나는 다른 바람을 가져본다. 코로나가 끝났을 때도 이 설렘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이제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 기분을 조금 더 맛보고 싶다고. 그럼 나는 어디로든 떠날 것이라고



여행을 ‘가고’ 싶은 게 아니다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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