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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Jul 23. 2020

제발 마스크 좀 씁시다! 쫌!!

처음으로 마스크를 경험해 본 스페인 사람들



지금 스페인은


다시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고 있다. 지난주부터 마드리드와 카나리아를 제외한 모든 도시에 ‘마스크 의무화’가 적용되었고(지금은 마드리드와 카나리아도 적용되었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벌금을 물지 않기 위해 제법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다니고 있다


봄 때의 확산과 다른점 중 하나는 이번 확산은 젊은이들이 중축이라는 것. 원래도 흥이 많고 여름이면 파티와 온갖 클럽 등을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이 봄 내내 집에 갇혀 있었으니 올해는 더 격하게 여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코로나가 다시 퍼지고 있고 말이다. 오죽하면 정부에서는 젊은이들 대상으로 외출 가능 시간을 정해 제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잘 쓰고 있던 사람들은 바, 식당에 들어가면 냉큼 마스크를 벗는다. 내가 다니는 어학원도 다들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고 있으니 괜찮다고들 하는데, 나는 내가 불안해서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는다. 진짜 만약에행여나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나는 너무너무너무너무 억울할 것 같다-


다들 집에 갇혀있던 3개월의 비상사태 기간 그리고 지금, 쭈욱 스페인에 있으면서 여기 사람들이 코로나와 마스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기록해본다. 물론 내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관찰한 기록이다보니 이게 스페인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참고하도록



2월

중국과 한국이 한참 난리던 2월. 스페인은 그저 평화로웠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저기 비단길 건너 먼 아시아 국가들의 일처럼 보는 듯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되었는데, 부모님은 오히려 “거기서 인종차별 당하고 있는 건 아니냐”며 나를 걱정하셨다. 다행히 인종차별을 겪은 적은 없었다 -사실 산세바스티안이 대도시가 아니다보니 평소에도 인종차별을 당할 일은 없었다-





나는 이미 1월부터 건물 엘레베이터도 사용하지 않았고, 사람이 많이 오가는 시내 번화가나 기차역 등은 근처에도 가지 않던 터였다. 그걸 유일하게 어긴(?) 날이 2월 말에 있던 카니발 축제, 이 때 한 번 뿐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코스튬을 입고, 놀이공원 퍼레이드 맞먹는 화려한 행진이 거리에서 진행되는데, 코로나 상황도 있고 한 달 전에 팔뼈가 부러진 터라 나는 수줍게 사람들 뒤쪽에서 퍼레이드를 관람했다. 고퀄의 의상과 분장을 하고 놀러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이게 당분간 마지막 축제가 될지,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3월

그런 하하호호 분위기가 3월이 되자 긴박하게 바뀌어 갔다. 3월초 코로나의 화염을 붙잡지 못한 이탈리아는 일부 지역 봉쇄, 곧이어 전국을 봉쇄하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수업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학원에도 예기했지만 아직은 다들 코로나가 자기에게 닥칠 재앙이 될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 했다. 같은 반에 프랑스 남자애는 “감기의 일종일 뿐이다. 독감보다 치사율도 낮다”며 반박했다. 나만 예민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물론 마스크를 쓴 사람도 볼 수 없었다


‘더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구나!’라고 이 곳 사람들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스페인도 이탈리아에 이어 무서운 속도로 확진자 수가 올라갔고, 3월 중순 산체스 총리는 ‘국가 비상사태(estado de alarma)’를 선포했다. 이제 사람들은 슈퍼와 약국, 즉 생존을 위한 외출 외에는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내일 모레부터 비상 경계령에 들어갑니다”라고 하니 사람들은 패닉이 되었다. 너도나도 슈퍼로 뛰어가 손에 집히는대로 물건을 잡아 넣었다. 신기한 건 다들 휴지를 꼭 카트에 넣던 거다. 비데가 거의 없는 곳이니 휴지가 생존필수품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그냥 슈퍼를 두런두런 둘러봤다. 코로나가 여기서도 확산될 게 뻔했기에, 필요한 물건들은 이미 2주 전에 모두 사 두었었다. 약국에서 알콜도 샀고 부족한 건 딱 하나였다


마스크. 마스크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다. 마스크는 ‘심각한 병에 걸린 환자’ 혹은 ‘공사장 인부’가 쓰는 물건이라고만 생각하던 국가다. 스페인뿐만이 아니라 아마 유럽 거의 전역이 마스크를 그렇게 생각해왔을 것이다. 마스크를 사려면 온라인을 통해 중국에서 파는 제품을 사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구하기는 어려웠고, 가격도 이미 펄쩍 뛰어올라 있었으며, 지금 구매를 해도 한두달 뒤에나 올터였다





나는 결국 마스크를 만들기로 했다. 외출이 제한되기 전날 천가게를 찾아 (고심해서) 천을 골라 사고 중국가게에 들려 고무줄끈을 샀다. 바느질 도구는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 있었다


마스크 만들기는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블로거분들이 올린 소중한 글들을 읽으며 내가 따라할 수 있을 거 같은 글을 골랐다. 그 다음은 손바느질과의 싸움만 남아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마스크를 만드는 것이다 보니 대충대충 바느질을 할 수는 없었기에, 마스크 하나를 손바느질로 완성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5월

집콕하는 시간은 천천히 흘러갈 것만 같았는데 왜그리 빨리 지나가던지. 먹고 먹고 살찌며 4월을 지나보내고(나는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5월이 됐다. 집 근처 나무가 완전히 초록빛이 되었다





스페인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 5월이나 되어서였다. 그간에는 절반도 채 안 되는 사람들만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여전히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깨지지 않았고, 마스크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믿지 못했으며, 사실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제서야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갔는데, 그 와중에는 나처럼 집에서 바느질을 한 건지 천마스크를 쓴 사람도 많이 보였다


처음에는 2-3주만 실행될 것 같았던 국가비상령도 시작된지 이미 2달이 되었다. 스페인은 각 주(지역)마다 상황에 따라 제한사항을 통제했는데, 산세바스티안은 5월 중순부터는 바깥 산책이 가능해졌다. 산책이 가능해지자마자 쏟아져나오는 사람에(그리고 다수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나는 외출을 조금 더 미루기로 했다





그래서 두달만에 산책을 했을 때 더없이 기뻤다! (번화가에는 사람이 정말 많고 마스크 안 쓴 사람도 많아서 놀랍고 무서웠지만) 밖에서 온전히 맞는 햇빛과 바람, 초록 나뭇잎들의 냄새.... 더없이 황홀했다



아직 올해는 한 번도 안내려가보뉴바닷가



7

그렇게 스페인은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는  했다. 매일 확진자가 생기긴 했지만 그전에 비하면 작은 숫자였고, 일별 확진자 수도 조금씩 줄어 들었다


마스크가 풀리기 전에는 바느질한  마스크로, 이후에는 약국에서  마스크로 버텼다. 여기 약국이나 슈퍼 등에서 파는 마스크는 모두 중국산이었는데 생각하던 것보다는  쓸만했다. (필터 기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6, 부모님으로부터 한국산 마스크를 받은 뒤에는 한국 마스크만 쓰고 있다. 현지인들이 덴탈 마스크를 쓰는 가운데 나는 꿋꿋이 땀흘리며 KF94를 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뭔가 있는 것 같아 창 밖을 보니 건너편 건물에 앰블런스가 와 있고 구조대원은 방역복을 입고 있었다. 수분이 지난 후 한층 더 방역복을 두텁게 입은 구조대원이 어르신 한 분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조금 긴장이 풀려가던 중, 다시 긴장이 확 되었다


7월부터는 거리에서 외국인, 여행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여름 시즌을 맞아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국내로 국외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코로나가 다시 무섭게 퍼지기 시작했다.





곧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가 되었다. (6세 미만 아이는 의무가 아니다) 원래는 대중교통, 슈퍼마켓 등에서만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였기 때문에 거리에서는 절반 채 안 되는 사람들만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가 올해의 악세서리라도 된냥 사람들은 팔에 마스크를 걸고 다녔다


그냥 말로만 의무화를 하면 제대로 실행이 안 될 걸 알아서인지 ‘벌금’도 함께 얘기되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만약 벌금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잘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의 불편함, 답답함을 50이라고 얘기한다면 여기 사람들은 80은 된다고 느끼고 말할 것이다. 평생 마스크를 쓸 일이 없던 사람들이니 오죽할까


4개월만에 돌아간 어학원에서도 건물 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서로 마주보고 ‘말’을 하는 수업인데도 다들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으니 괜찮아”라는 반응이다


...... 그 1.5미터밖에 안 되는 사회적 거리라도 잘 지키고 있으면 이렇게 힘이 빠지진 않을 것이다. (학원에서는 위 사진처럼 책상 간격을 떼고 자리를 떨어져 앉도록 자리 표시를 해놨는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는 마스크가 대화 주제에 오르니 다들 “너무 답답하다”, “바깥에서는 왜 써야하는 지 모르겠다”, “마스크를 쓰면 숨을 잘 못쉬어서 건강에 안 좋다”는 반응이었다


실로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싶다




덧) 그래도 벌금때문에(덕분에) 여기는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다니느, 일명 턱스크를 하는 사람은 없다. 돈이 이렇게 소중하고 무서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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