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친구가 노견을 키우고 있었어요. 나이가 워낙 많아 시름시름 앓고 있는 중이었는데,... 하필 그 아이가 갑자기 죽은 거예요."
"어떻게 해. ㅠㅠ"
"격리 중이라 밖으로 외출이 안되니까 장례업체를 불러서 죽은 강아지만 보냈다더라고요. 아무도 같이 못 가고... 친구는 자기가 아픈 거보다 강아지를 그렇게 혼자 보낸 게 너무 마음 아파서 죽겠다고 해요."
사랑하는 가족의 배웅을 받지 못한 채 혼자 떠난 아이
전해 들은 말 만으로 심장이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떠나가면서 아이는 많이 외로웠을까.'
'그래도 엄마, 아빠 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수 있어서 따뜻했을까.'
'한 줌의 재가 되어 떠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얼마나 사무쳤을까.'
TV나 YouTube에서 "세상을 떠나는 반려동물"에 대한 콘텐츠를 보면 덜컥 겁이 난다.
해서 재빨리 채널을 돌려 피하거나, 스크롤을 내려 콘텐츠를 피해 버린다.
웃기고 가벼운 내용의 영상을 급히 틀어서 보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이 되고,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나에게 오지 말아 달라 애원해도 분명코 다가 올 그 순간.
언제일지 모르는 그 순간.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쭈니, 차니가 아팠을 때
나는 근무 중 참았던 눈물을 퇴근길 차 안에서 쏟아냈더랬다.
혈뇨를 보고 비틀거리던 차니가 "자가면역용혈질환(Autoimmune hemolytic disease)"로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두 번의 수혈과 약물투여를 받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기던 때가 있었다. 차에서 충분히 오열했음에도 불구하고 면회하러 가서 아이를 보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고 나를 위로하던 남편은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해야 하지 않을까.' 침착하게 얘기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면회시간에 찍은 사진을 보다가 한 사진을 보고 고장 난 것처럼 멍해졌다.
사진 속 차니는 아픔과 슬픔이 가득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망울이,
"엄마, 나 아파. 살려줘..."
라고 절실히 호소하는 듯 보였다. 사진을 붙들고 한참을 울던 나는 아직은 차니를 보내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며 눈물을 닦았다.
우리의 최선과 차니의 간절함은 건강한 차니를 우리 품으로 올 수 있게 해 주었다.
쭈니는 어려서부터 자주 토를 했었다.
소화기관이 선천적으로 약한 아이인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고,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올해 들어 부쩍 토하는 횟수가 늘더니 무엇을 먹던 다 게워내기 시작했고, 드문 발작과 함께 몸이 점점 말라갔다.
뭔가 잘못된 듯싶은 불안감에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본 결과, 선천적으로 "간문맥단락증(PSS)"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간 기능에 부전이 오면서 간성뇌증이 온 상태라는 소견을 받았다. 수술이 불가능한 노견이라 평생 약을 먹으며 컨트롤을 할 수밖에 없다 했다. 덧붙인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쭈니가 그렇게 오래 살 수는 없을 거예요. 기대수명이 1년에서 2년 정도 남은 걸로 보고 있어요."
병원 입원실에서 쭈니가 치료받는 동안, 면회를 가서 아이를 만나면서 나는 차니 때처럼 울지 않았다.
되도록 밝은 얼굴로 신나게 놀아주고 눈을 맞춰줬다.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 퇴원 컨펌을 받고 쭈니는 퇴원을 했다.
집에 온 쭈니는 하염없이 잠을 잤고, 비틀거리며 걸었다.
짖는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 째지는 하이톤 소리가 목구멍을 약하게 긁었다.
너무 낯선 쭈니의 모습에 나는 충격을 크게 받았던 거 같다.
쭈니를 재우겠다며 조용한 2층 2호 형아의 방에서 쭈니를 안아 쓰담쓰담 재우다가 울컥 치미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내가 울면 가슴에 앞발을 얹고 눈물을 핥아주던 쭈니는 그저 힘없이 잠만 자고 있었다. 그게 너무 서글퍼서 쭈니를 쓰다듬으며 울고 또 울었다.
다행히 간에 좋은 사료와 헤파멜즈, 세레니아정을 먹이면서 간부전과 간성뇌증을 다스리고, 락툴로즈로 배변을 도와 뇌에 암모니아 같은 독성 물질이 쌓이지 않게 도움을 주는 과정을 통해 쭈니는 어느 정도 예전의 기력을 되찾았다. 할아버지처럼 꾸부정하게 걸어 다니긴 해도 토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며 지내고 있다.
헤어질 결심
쭈니, 차니의 가볍지 않은 투병과정을 통해 언젠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의 아픔을 잠깐이나마 실감을 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이 오면 덤덤하게 보내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여전히 그렇게는 하지 못할 거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이별을 맞이하지만, 다수의 이별은 각각의 존재와 1대 1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 존재와의 이별은 단 한번뿐인 것이다.
나에게 어떤 무게의 존재이고, 어떤 가치의 존재이고, 어떤 의미의 존재인지에 따라 그 슬픔의 경중은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