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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Nov 28. 2022

어쩔 수 없지 뭐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HOT한 홍대 역세권 1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노후된 4층 건물이지만 입지 조건으로 인해 꽤 묵직한 금전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 3년이란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곳은 부자지간이 사장과 임원의 직함을 달고 오랜 세월 함께 회사를 일궈가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그동안 듣고 보고 겪은 여러 가지를 통해 느낀 두 분은 성품이 나쁘신 분들은 아니다. 


사장님께서는 가끔 격하게 욱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직원들의 눈치를 보는 조심성이 있는 편이고, 부장님은 미진한 부분에 대해 건의를 드리면 이해를 잘 못하더라도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편이고, 비록 허무개그이긴 해도 농담과 수다로 분위기를 풀어주는 배려도 있다.  


하나, 우리 직원들 입장에서 몹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오랜 세월 사장님께서 책 보따리 영업으로 고생 고생하며 회사를 일구긴 했지만 보따리 영업 외 회사 운영의 대부분을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해서 운영한 결과, 사회적으로 돈 적으로 너무 순진하달까?... 운영에 대한 상식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주변들에게 수두룩히 호구를 잡히고 사신 거 같더랬다. 


사실 호구 잡힘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사장님은 돈이 아까워 점심을 굶거나 사발면과 햇반으로 퉁치는 일이 잦다.

히터나 에어컨을 껐나 켰다 하면 오히려 전기세가 더 나오니 적정 온도로 은근히 틀어두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려도 굳이 사람 없는 사무실에 혼자 있는 점심시간엔 전등과 냉난방기를 다 끄고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서 유튜브를 틀어 시청하신다.

필요 없다 생각하여 버린 물건을 다시 집어 들고 쟁여두는 것은 일상이고...


그렇게 아낌에 충실하신 분들이지만 

양심 없는 저자나 거래처 등의 무리한 요구 또는 

실수로 오버페이 한 인세나 지불금에 대해서, 또는 

사기꾼 같은 영업직원이 가불해 간 수천의 돈을 떼인 것에 대해선 한 없이 관대하다.


곁다리로 새어나가고 사기당한 수 천의 돈에는 늘,



어쩔 수 없지 뭐...  



라는 한 마디로 상황을 종료한다.

그 모든 것에 대한 한탄은 직원들에게 투하된다.

속이 답답해진 우리가 내용증명을 하든, 고소를 하든 뭔가 액션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열을 올리며 방법을 찾아 설명해 드려도,


어떻게 그렇게 해... 

라며 소심한 말끝을 흐리고 만다.


최근엔 사장님께서 취미활동(사장님은 예전에 악단에서 노래를 하셨다고 한다.)을 위해 수천 대의 보증금과 수백 대의 월세를 내며 대여했던 극장식 레스토랑의 건물주가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법원으로부터 인정받는 바람에 수천의 보증금을 날리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경리과장님을 괴롭혀 가며 법원의 판결문을 찾아보시던 사장님은 이번에도  


"어쩔 수 없지 뭐~"... 를 시전 하셨다. 


우리 직원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이 "어쩔 수 없지 뭐~" 지점이다.


그러던 와중에 1층을 대여하던 세입자가 나가서 1층이 공실이 되었다. 

당연히 홍대 1분 역세권의 1층인 공실을 임대하면 꽤 묵직한 임대료를 받을 수 있고 

그걸로 손실을 일정 부분 메꿔갈 수 있겠다 생각했던 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사장님은 그곳에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한 노래방을 만들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덧붙이신 한 마디, 

그깟 임대료 몇 백만 원~ 

나는 통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5천만 원에 대한 권리를 쉽게 포기하고, "그깟 임대료 몇 백만 원"은 우스운데 점심값은 무서운 사장님의 마음속을,


매일 돈 없어서 밥 못 먹는다고 노래 부르시는 부장님의 머릿속을.


당연히 수거해야만 하는 거액들에 대한 권리를 그리 쉽게 포기하는 것은

고민하고 행해야 하는 절차에 대한 귀찮음일까?

부담스러운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소심함일까?


내 일도 아닌 일에 이리 신경이 쓰이는 이유가 

쓸데없이 발휘되는 오지랖인가?

아니면, 

이해 불가한 그분들에 대한 답답함인가?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니 나 또한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어쩔 수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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