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릭 Jan 10. 2023

알사탕

한가한 밤길을 달리는 차 안,


드문드문 달려있는 신호등의 불빛은 빨강, 주황, 초록으로 색을 바꿔가며 빛을 냈다.  


동그랗고 선명한 색감은 입에 달큼한 침이 고이게 했다.


꿀떡꿀떡 고인 침을 처리하자 코끝에 향기가 스미는데 어딘지 꽤 친숙하면서도 그립고 웃겼다.  


그 향은 이내 기억을 되살려냈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동그란 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원통형 케이스 속의 알사탕들….  


그중 초록색 알사탕이 주는 청량함은 자꾸 손을 뻗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하여 속이 느글 해 질 때까지 사탕을 빨아대게 하는 중독성이 있었지만 항상 다른 색의 사탕들보다 덜 들어있는 초록알사탕은 모자람의 여운을 주어서 결코 속이 느끼해지게 만드는 일 따윈 없었다.


그때인가.

내게 초록색이 호감색이 된 계기말이다.


초록색을 생각하면 늘 알사탕 특유의 청량한 맛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 맛을 생각하고 있자면 눅눅했던 기분에 뽀송한 상쾌감을 주었고, 너덜했던 감정에도 생기가 주어졌다.

 

그렇게 돌고 도는 연쇄기억작용에 의해 감정의 환기가 이루어지고, 순간을 살아가는 내게 반짝! 하는 기운을 주었다.

긍정적인 작용들이 거듭될수록 초록색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 공고하고 단단해졌다.


무채색 의상이 "거의"를 이루고 있는 내 옷장 속에 "문득"보이는 의아한 옷의 색 또한 초록색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로드샾에서 발견한 쨍한 초록색의 원피스였다.

보는 순간 미소가 지어지는 색감에 나는, 입으면 임부복처럼 배가 둥실해 보이는 루즈핏 하이웨이스트 원피스임에도 불구하고 결제를 서둘렀다.

기분이 상승기류를 원할 때면 손을 뻗어 입어댄 탓에 지금은 쨍한 초록이 아닌 빛바랜 녹색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안다.

날 좋은 봄과 여름이 오면 수시로 손을 뻗어 기분 좋게 입고 외출을 함께 할 녀석이 빛바랜 녹색 원피스일거란걸.


기억이 주는 고통.

기억이 해주는 환기.


기억이 주고 해주는 것들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 나란 유약한 인간이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기억이 "해주는" 환기에 오래 휘둘려보고자 순간순간 애를 쓴다.


애씀이 기특하기도 안쓰럽기도 하여 오늘도 나는 스스로를 도닥이며 격려한다.









이전 06화 그러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