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릭 Feb 18. 2023

나는 희망한다.


"선생님이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라면 갑니다."


태어난 지 20일 된 둘째 아이가 얕게 신음하고 있는 걸 발견한 건 아침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크게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들릴 듯 말 듯 신음소리를 내는 아이를 안고 살폈다. 그저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친정엄마를 큰소리로 불렀다. 엄마는 근처 소아과로 아이를 안고 뛰었다. 대기하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양해를 구하며 뛰어 들어가 의사 선생님 앞에 아이를 드밀었다. 아이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상태가 위중하니 지금 당장 응급실로 가라고 하셨고 우리는 한시의 지체도 없이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품 안의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기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저 작게 흘리는 신음소리가 아이가 내는 기척의 전부였다. 응급실로 가는 동안 흐르는 시간이 숨통을 점점 세게 조여와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3kg도 안 되는 신생아가 응급실로 들어서자 의료진들은 신속히 아이를 받아 살피기 시작했다.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던 의료진의 표정에 당황이 스쳤다. 재측정을 거듭하더니 급히 인튜베이션을 준비해 인공호흡관을 아이의 기도에 넣었다. 가는 목에 두꺼운 관을 받아들이느라 버겁게 꿀렁이는 아이의 목을 보며 정신이 까무룩 넘어갈 것만 같았다. 처치를 끝낸 의사가 아이를 안고 3층 신생아 중환자실로 뛰어올라가는 긴박한 뒷모습을 보면서도 후들거리는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아 그저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검사나 처치를 하기에도 겁이 날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원인을 모르겠다고, 아마도 오늘이 고비일 거 같으니 맘의 준비를 해두시는 게 좋겠다는 의료진의 말에 남편은 비상구 계단에 쭈그려 앉아 혼자 울었다. 우는 남편을 발견한 나는 차마 같이 울지 못하고 울음을 삼키며 엉엉 우는 그의 등을 토닥였다.


CT, 초음파, 피검사 등의 각종 검사가 행해졌고 산소포화도가 좋지 못한 아이를 위한 응급처치로 스턴트 시술이 이루어졌다. 가는 허벅지의 동맥을 따라 관을 넣느라 샌 피로 얼룩진 아이의 배냇저고리처럼 내 속은 각혈이 차오르듯 답답해졌다. 마음에 가득 차오른 고통을 억지로라도 토해내고 싶었다.


"원인을 찾았습니다."


아이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대혈관 전위증, 동맥관개존증, 심실중격 결손증.


병명만으로도 어마 무시한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 일주일 안에 죽을 수도 있는 상태였는데 어찌어찌 20일을 버티다 한계에 다다른 아이는 살려달라 신음으로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이 병원에는 당장 수술 가능한 의료진이 없다고 했다. 외부 일정으로 인해 설연휴가 끝나야 출근을 한다고 했다. 대신 유능한 심장 전문 병원에 연락을 해 보았더니 마침 신생아 중환자실 자리가 한 자리 났고 당장 수술도 가능하니 그쪽으로 빨리 옮겨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치의 선생님께서 의견을 주셨다. 또한 산소포화도가 저수치로 너무 오래 지속되었기에 뇌의 손상이 염려되어 뇌초음파를 해 본 결과 뇌의 미세한 변형도 보인다고도 했다. 아이가 수술을 잘 마치고 깨어났을 때 뇌성마비 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생길 위험이 있을 수 있는데 계속 치료를 진행하시겠냐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다른 거 다 모르겠고, 살려만 주세요, 선생님!"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나는 처절하게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주치의 선생님과 친정엄마는 그런 나를 달래며 함께 울어주었다.


전원(轉院)을 위해 아이는 작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복잡한 전선줄을 온몸에 휘감고 빠르게 달리는 앰뷸런스에 실려 생명을 건 위험한 외출을 감행해야 했다. 매우 위중한 상태이기에 혹시나 닥칠 응급상황을 대비하려면 본인이 함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주치의 선생님은 앰뷸런스에 올랐다.


모든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었고, 모두의 배려 덕에 우리는 먼 길을 빠르게 달려 심장전문병원에 도착하였다.

아이의 담당 선생님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아이는 수술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아니라 했다. 하지만 더 지체했다가는 아예 손을 쓸 수 없기에 위험하지만 내일 수술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마취에서부터 수술과정까지 자세한 설명을 이어가셨다. 다정하진 않지만 단호하고 차분해서 믿음이 드는 소아심장외과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는 마음 깊이 기도를 담았다.


아이의 수술을 위해 거액의 선납금이 필요했다. 카드로 선납금을 결제하였다.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돈이 들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암담했지만 아이의 회복이 우선이었기에 돈에 대한 염려는 순위를 미뤄두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남편은 손에 서류를 말아 쥐고 중환자 대기석으로 왔다.


"출생신고하고 왔어."


우리 가족 네 명의 이름이 나란히 오른 주민등록등본.


최윤경 산모의 아들이 아닌 “안성준”이란 이름을 세상의 시스템 안에 새긴 아이.


"이렇게 당당히 주민등록에 이름을 올렸으니 잘 견뎌낼 거야."


울컥 울음이 치솟았지만 참았다. 아이를 위해 강하게 견뎌야 했다. 눈물을 참느라 붉어진 눈동자에 힘을 주고는 남편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에 앞서 보호자 면회가 이루어졌다.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시아버님과 친정부모님, 남편과 나는 아이의 병상 앞에 둘러 서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성준아..."


조용히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뜬 아이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눈가로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지 어미가 부른다고 눈을 뜨고 보네."


친정엄마는 말 끝을 미처 마무리하지 못하고 울었다.

시아버님은 묵묵히 그런 아이를 바라보셨다.


아이는 작은 가슴을 열고 수술을 받았다.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겼고, 긴 회복기간을 거쳐 우리 곁에 돌아왔다.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 병실로 옮기던 날, 우리에게는 거액의 병원비가 청구되었다. 기쁨과 동시에 근심이 찾아들었다.


퇴원을 앞두고 시아버지께서는 출판사 일을 미뤄두고 아이를 만나러 오셨다. 여전히 작지만 건강해진 아이, 입으로 우유를 빨며 잠이 드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셨다. 자는 아이를 침대에 눕혀놓자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시던 시아버지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어 우리에게 내미셨다.


"치료비에 보태라."


봉투 안에는 병원비를 치르기 충분한 액수의 돈이 들어있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이렇게 쓸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속이 시원하고 좋다."


너무 죄송하고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나고 또 났다.


쑥스러워지신 아버님은 자는 아이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를 토닥토닥 어르셨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말씀을 잊지 못한다.

힘들게 번 돈을 망설임 없이 쓸 수 있어 기쁘다 말하시던 그 마음에 대한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

어떻게 쓰는 돈이 가치로운 것인지를 몸소 알려주신 그 한마디.


너무도 명쾌해서 그저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말씀.


돈의 진정한 가치는 세상을 이롭게 함에 있음을 알려주신 시아버님.


2013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기 전, 심한 통증에 괴로움이 크셨기에 이용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환자들의 편의와 고통완화에 탁월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고급 호스피스 병원에 아버님을 모셨었다. 시아버님의 손을 조물조물 마사지하고 있자니 눈을 감고 편안한 숨을 내쉬셨다.


"나는 갈 준비가 되었는데 왜 자꾸 살려놓고 그러니..."


마르고 갈라진 시아버님의 입술은 그리 서글픈 말을 무덤덤히 내어놓았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러세요. 우리랑 같이 계셔야지. 나도 아버지한테 돈 좀 시원하게 쓰게 해 주세요."


마른 시아버님의 손을 주무르며 울음을 참자니 자꾸 말간 콧물이 흘러, 부러 기침하는 척 고개를 돌려 콧물을 훔쳤다.


나는 아직도 많이 모자라다.


현명하게 돈을 버는 것에도 부족함이 있고, 가치롭게 돈을 쓰는 것도 잘 못한다.

하지만 시아버님이 남겨주신 가장 값진 유산, 그때의 그 말씀을 순간순간 꺼내어 보며 잊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되새기다 보면 어느 순간, 제법 잘하고 있는 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희망한다.


내 생에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 시아버님이 알려주신 진리를 따라 "제법 잘 노력하며 살았구나." 흡족해하며 떠날 수 있길 희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1. INTRO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