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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Feb 26. 2024

01. 또, 이혼했습니다.

"두 분은 한 번 이혼하셨었는데 또 이혼하시는 거에요?"


판사복을 입은 젊은 판사님은 서류를 훑어보다가 조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네."


시간 차를 두고 그와 나는 인정했다.


그렇다.


나는 같은 사람과 같은 이유로 두 번째 이혼을 했다.


............


미성년인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들의 이혼 의사가 확실하다는 이유로 이혼확정판결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앞서 들어간 수많은 커플들에 비해 초간단하고 초스피드 한 결정이었다.


"아까 판사가 얘기하는데 좀 쪽팔리더라."


법원 건물을 나서며 그가 말했다. 그는 친구와 농을 나누듯 킥킥 웃었다.


"그러게. 좀 쪽팔리네. 두 번 이혼할 줄 알았으면 딴 놈이랑 살아볼걸."


나는 최대한 시니컬하게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건조하게 내뱉었다.


그가 어떤 마음인지 모를 옅은 미소를 띤 채 침묵했다.


...........


이혼 신청 후 한 달의 시간이 지나 최종 판결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면서 나는 꽤나 덤덤했다.

대기석에 앉아있자니 일찌감치 도착해 차에서 대기 중이었다며 그도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나와 이혼하러 온 사람 같지 않게 조금 신나고 들떠 보였다. 곁에서 재잘재잘 얘기도 잘하고 실실 웃기도 잘했다. 가뿐한 그의 태도가 조금 어이없긴 했지만 나쁘게 이별해서 좋을 게 무언가 싶어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평온했다.

그런데, 휴대폰을 켜는 그의 손으로 무심히 시선을 옮겼다가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액정화면을 가득 채운 낯선 여자의 얼굴.


순간 고개를 돌려 시선을 옮겼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머리가 어질 해졌다.

 실체를 갑작스럽게 확인하게 되니 꼿꼿하게 지키고 있던 자존심이 바사삭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느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을 컨트롤하자니 이내 냉정한 마음을 쉽게 되찾았다. 오히려 이전 보다 더 차게 식어버린 마음이 몹시 시렸다.


그와 두 번째 이혼을 확정 짓던 날, 나는 두 번의 서운함을 느꼈는데 나나 아이들이 한 번도 차지해보지 못했던 휴대폰 바탕화면을 다른 이로 가득 채워서 이혼법정에 가지고 나타난 그의 배려 없음이 그 첫 번째였다.


..........


번째 서운함은 그냥 내 작은 기대였다.

이른 아침 법정 출석을 해서 긴 대기시간을 거쳐 11시가 넘어서야 판사를 만났고 판결 이후엔 시청에 가서 이혼접수 처리를 했다.

아침도 굶고 점심시간도 다 된 터라 나는 그가 점심이라도 먹고 헤어지자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말하긴 싫었다.


"병원 들렀다 가야 되니까 역 앞에 세워줘. 차피 당신도 OO 가야 할 테니까 저기 돌아서 큰 길가에 세워주면 되겠네."


"나 딴 데 가야 해서 이쪽 길가에 세워주면 안 되나?"


"어디 가게?"


"어디 가는지 그걸 내가 왜 너한테 다 말해야 되냐?ㅋㅋㅋ"


"아, 누구 만나러 가는구나."


당황했는지 웃다 사레들려 컥컥거리면서도 그는 끝내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선심 쓰듯 병원 앞에서 세워주겠노라 했다.

그가 병원 앞에 차를 세우자 나는 말없이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향했다.

걸으며 스스로를 호되게 자책했다.

참으로 바보같이 따뜻한 이별을 기대하다니.

최후의 한 끼를 기대한 스스로가 한심했다.


...........


그렇게 같은 사람과의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결혼 최후의 날 겪은 두 번의 서운함으로 그와의 사이에 남아있던 여러 감정을 말끔히 털 수 있었다.

하여 지금의 나는 잔잔하다.


나는 지금의 평온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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