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대전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첫 직장이라 모든 게 어색했다.
개발 팀장님 한 분.
디자이너 팀장님 한 분.
내 또래 디자이너 한 명.
넷이서 학회 플랫폼을 만들었다.
디자이너는 랜딩 페이지만 만들고
나머지는 전부 내 몫이었다.
화면부터 어드민까지.
PHP로 처음부터 끝까지.
풀스택이라고 하면 듣기 좋지만
그냥 혼자 다 하는 거였다.
학회가 열리면 현장에 나갔다.
5박 6일 동안 새벽에 출근해서
자정이 넘어 끝났다.
일은 반복이었다.
이전 학회 결과물을 복사해서
하나씩 커스텀해서 조립하는 과정.
제대로 된 기획은 없었다.
"이전 거처럼 해주세요."
"일단 만들고 계세요."
줄바꿈 하나, 폰트 크기, 색상.
한 페이지에 수정 요청이 수차례.
오전에는 이렇게.
오후에는 저렇게.
수직적인 구조라 개선안은 의미 없고
연봉은 적고.
팀장님이 퇴사해도 연봉 인상은 없다.
내일채움공제를 하고 있으니 연봉 인상은 없다.
회사도 주먹구구.
나도 주먹구구.
흔하디흔한 좋소기업이었다.
재미도 보람도 보상도 없이
소중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다만 이때 깨달은 게 있다.
체계가 없다는 것의 불편함.
보상이 없는 일에서 오는 회의감.
그리고 이런 회사에서
10년, 20년을 보낸다는 것의 끔찍함.
스타트업은 달랐다.
두 번째 회사는
시리즈 B 규모의 스타트업이었다.
팀이 구성되고
역할이 분배되었다.
스프린트 단위로 회의하고
로드맵에 맞춰 일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 iOS 개발자,
프론트, 백엔드.
각자의 롤에 맞는 일만 한다.
간식과 커피가 있고
편하게 쉴 수 있으며
맡은 일이 정해져 있으니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은 생활.
새로운 툴, 새로운 라이브러리.
협업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배웠다.
중소기업과는 모든 게 달랐다.
다만 스타트업이다 보니
사람이 자주 바뀌고
방향도 쉽게 바뀌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늘 있었지만
회사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대기업에 갔다.
스타트업에서 누렸던 복지가
작아질 정도로 좋았다.
사옥.
사내식당.
넥슨다방.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회사 콘도.
부모님 보험까지 챙겨주는 곳.
복지만 좋은 게 아니었다.
팀원들이 친절했다.
다른 팀들까지 다 친절했다.
근속 연수가 오래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일상적인 쿠션어 속에서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배웠다.
앞으로도 이런 팀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에서는
전체를 담당하지 않아도
비즈니스의 핵심적인 부분을 맡는다.
서비스가 커지면
일이 쪼개지고
내가 할 것들이 명확해진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갈수록
회사의 규모는 커지고
내가 할 일은 좁아진다.
그 좁은 영역에서 깊이를 파거나
혹은 그냥 유지하다가 떠나거나.
단기간에 큰 보상은 어렵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보상.
내가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지원되는 곳.
사실 대기업에 있으면
오래 다닐 수밖에 없다.
일하기 너무 좋으니까.
이 회사를 나와
프리시리즈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창업센터의 작은 방 한 칸.
대표님 두 분과 CTO 한 분.
먼 출퇴근 거리.
적당한 보상에 스톡옵션.
일일 한도 5000원짜리 개인 카드.
시스템의 구조와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입사했지만
막상 들어오니 핏이 맞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퇴사했다.
그리고 중견기업.
중견기업이지만
회사를 다 쪼개놔서
10개의 계열사에 약 100명씩.
사옥이 여러 개 있었고
연구실도 있었고
엄청 자유로운 회사였다.
회사 생활은 동아리 같았다.
학벌 좋은 어린 친구들이 많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 동아리에 온 느낌.
하지만 제대로 된 개발을 못 했다.
3년 된 스타트업인데
제품이 없었다.
다른 계열사에서 만든 제품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 제품이 계속 만들어지지 않아
직원만 뽑고 있는 상황.
당연히 일을 안 했다.
개발자가 아니라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겉은 번지르르했지만
안은 놀자판이었고
서비스는 엉망이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굴러간다.
다른 계열사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100명의 직원이 매출 없이 버텼다.
그러다가 파산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스타트업.
완전 초기지만
자본이 있는 회사였다.
공유 오피스에 허먼밀러 의자.
4K 모니터에 최신 사양 맥북.
업무 환경은 대기업급이었다.
여기도 혼자 다 해야 한다는 건
중소기업과 다를 바 없었지만
서비스를 처음부터 키워 나간다는 것.
거기에 필요한 자원이 지원된다는 것.
성과에 대한 보상이 있다는 것.
이런 게 달랐다.
코로나 때도 못 했던
주 2~3회 재택을 했다.
여섯 곳의 회사를 다녔다.
체계가 없는 곳도 있었고
체계만 있는 곳도 있었다.
복지가 좋은 곳도 있었고
복지만 좋은 곳도 있었다.
3년 동안 제품 없이 버티다 파산한 곳도 있었고
일주일 만에 나온 곳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혼자 만들고 있다.
체계도 나.
복지도 나.
보상도 아직 없다.
여섯 곳을 거쳐 배운 것들로
한 사람짜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