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by 김상욱

첫 월급을 받았을 때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됐고,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됐고,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


초봉 2200.

친구들은 4천을 받는다고 했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까지 초라하진 않았다.


“그래도 시작이니까.”


일도 곧잘 했다.
어렵진 않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반복되는 일을 하기 싫어서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반복이었다.


학회마다 조금씩 다른 요구사항.
그리고 그 요구사항을 맞추기 위해
기존 시스템을 복사 붙여넣기 한 뒤 커스터마이징.


겉보기엔 새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늘 비슷했다.


회사에는 프로세스가 없었다.


팀장님은 계셨지만
내가 입사한 이후로 개발은 대부분 나에게 맡겨졌다.
팀장님은 기획자처럼 제안서를 쓰고
학회에 출장을 다녔다.


나는 남아서 만들었다.


저번 학회랑 비슷하게 일단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요구사항은 하나씩 붙는다.
그때그때 수정하고, 덧붙이고, 또 붙인다.


어느새 시스템은 누더기가 된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불필요한 일들이 눈에 보였다.


이건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자동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개선할 여지는 없었다.


그냥 또 비슷하게,
이번에도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스템이 괜찮은 건가?
나만 지금 이상한가?


내가 생각한 회사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걸 바라고 취업한 건 아니었는데.


나는 언제까지 초가집만 지어야 하지?


행사가 끝나면 허물어지고,
다음 학회에서 또 같은 집을 짓는 기분.


그때, 같이 게임했던 동생들은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랭킹이 오르고, 대회에서 증명하고,
자기 이름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누더기 시스템을 붙이고 있었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이라도 다시 게임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제일 잘했던 곳으로.


그리고 나는 또 선택했다.


이번엔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BJ를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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