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춘기가 오고 난 뒤, 홀로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의 여운을 글로 적어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상의 상품으로 여행 항공권을 받아 엄마와 또 한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같았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내면의 나를 마주하며, 떠나기 전과 후는 달라졌다.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영어 가르치는 일을 했고, 일을 시작하고 8년 동안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6년 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음에도 그 순간도 이삿짐 정리를 하고, 일주일 뒤 바로 면접을 본 뒤 일을 시작했다. 육아와 집안일, 바깥일까지 지칠 만도 했다. 올해 2월, 나는 선언했다.
"나 쉴래요."
"어...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쉰다는 말에 남편은 그렇게 하라는 말 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상태를 알기에 더 일을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한 것은 글쓰기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글쓰기에 연이 없었다. 학창 시절 한 번도 글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글쓰기만큼 지겨운 것도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내가 즐겼던 것은 일기였다. 중학교 때부터의 일기는 검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적어도 상관없었으니까 잘 써도 그만, 못 써도 그만이었다. 그런 나에게 여행 에세이의 상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글 쓰는 형식에 얽매여 재미를 몰랐지만, 여행 에세이를 쓰는 순간만큼은 달랐고, 그만큼 자존감도 올라갔다.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3월 중순, 글쓰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여행 에세이 상을 받은 '여행인문학도서관 길 위의 꿈'이라는 곳에서 <오늘부터 에세이스트> 강좌가 열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한 학생으로 매주 출석 도장을 찍었다. 어떤 날은 3시간가량 걸려서 간 적도 있었다. (외부 일정으로 갑작스레 탄 1호선에 어리둥절했기에 다른 방향으로 잘못 탔었던 것이다.) 3개월 동안 나는 초보 학생으로서 글쓰기 기초에 대해 배웠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수업을 들은 것은 정말 초보이기도 했고,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훌륭한 강사의 강의였으며, 나를 진정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매주 글을 썼다. 꾸준히 쓰다 보니 처음보다 쓰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생각은 더 많아졌다.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물었다. 그 과정으로 인해 나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온전한 나를 대면할 수 있었다.
사십춘기가 온 뒤 많이 한 생각, 내가 왜 그렇게 혼자 아등바등 살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글쓰기를 하며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한 번도 누구에게 의지해 본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했고, 그것이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자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않고 더 미친 듯이 일했는지도 모르겠다. 일 중독자처럼 말이다. 한데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진정 홀로 선다는 것은 직업을 가지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 스스로 서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그 내면이 강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내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고, 나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이 사십이 되기 전에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문득 부산에 가고 싶어 졌다. 내가 온전히 나로 있었던 그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인터넷 접속을 하고 KTX 홈페이지에 들어가 부산행 기차를 예매한다. 지금 당장 간단하게 입을 옷가지와 책, 노트북, 펜, 다이어리를 가지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천천히 역으로 들어오는 부산행 기차. 가벼운 마음으로 기차에 올라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집에서 가져온 책을 가방에서 꺼낸다. 다시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는 거다. 그 순간 정말 조만간 떠나야겠다 생각했다.
사십춘기가 오고 홀로 여행을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나로 존재했던 순간, 그 공간으로는 가보지 않았다. 그곳을 다시 찾으면 왠지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았다. 글쓰기 강좌가 끝나가는 전에 고향을 찾고 그 마음을 글로 옮겨야겠다 했다. 6월 어느 날, 나는 부산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