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존재했던 순간, 그 공간으로 1
-나 홀로 여행-
사춘기. 아니. 사십춘기가 왔다. 그것을 핑계 삼아 졸업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고등학교를 가야겠다 생각했다. 다대고등학교. 부산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동네인 다대포에 위치한 남녀공학이다. 고등학교를 방문하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7년 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아무렴 어떠하랴. 사십춘기인걸... 아이들을 맡기고 하늘을 가로질러 부산으로 향했다.
상쾌한 마음으로 이른 오전 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부산 햇살은 환영이라도 하듯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졸업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변한 나처럼 학교도 많이 변했을까? 주말이라 그런지 학교는 고요했다. 그 고요함을 깨기 싫어 잠자는 강아지가 깰까 봐 조심조심 걷는 아이처럼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교문 앞의 작은 정원. 분명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없었던 것이다. 졸업한 지 벌써 19년이 지났으니 무언가 하나 생길 만도 하다. 정원에는 큰 바위에 한자로 ‘多大人’이라고 적혀있었다. 다대인이라... 아래를 보니 ‘생각하는 바가 심대(甚大)하고 목표하는 바가 원대(遠大)하고 행동하는 바가 정대(正大)한 사람’이라고 정의 내려져 있었다. 과연 나는 다대인인가? 졸업을 했는데도 아직 먼 것 같다.
운동장으로 가 건물 전체를 봐야지. 한눈에 건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대신 오래 서 있으니 그늘 하나 없는 곳이라 머리맡이 뜨거워졌다. 그 당시 학교는 대부분 ㅡ자, ㄱ역자, ㄷ자 모양이었다. 반면 다대고등학교는 육각형의 꼭짓점 양쪽을 이어 반으로 자른 모양의 건물. 정 ㄷ자 모양이 아닌 벌어진 ㄷ자 모양이었다. 건물 중앙의 옥상에는 원형 건물이 하나 더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학교가 지어질 때부터 이슈였다. 다시 봐도 예뻤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3년을 다니면서 내가 지냈던 반의 위치는 이상하게도 1학년 때만 정확히 기억난다. 건물 1층의 맨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 칸 오면 보이는 교실. 나머지 학년은 몇 층이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신기한 노릇이다. 1학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나 보다.
교실로 들어가 볼까? 다행히도 중앙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벽에 빽빽하게 붙어있는 졸업생 사진들이 보였다. 아~ 설마 1회 졸업생부터 붙어 있는 건 아니겠지. 다행이다. 벽면이 모자라는 바람에 최근 졸업생들 사진만 있다.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간직해줄 졸업사진. 그 순간만큼은 옅게 화장도 하고 머리에 힘도 준다. 그때나 지금이나 꾸미는 건 여전하구나. 드르륵. 바로 옆 숙직실에서 소리가 났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나오셨다.
“졸업생이에요?”
“네. 저 1회 졸업생인데요. 졸업하고 처음 왔거든요. 건물 안 좀 둘러봐도 될까요?”
“그럼요. 천천히 둘러보고 가요.”
“감사합니다.”
1학년 때 교실을 향해 오른쪽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탈의실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고 교실도 여전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첫 교실. 교실 문이 잠겨있어 유리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한 소녀가 책상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려 서랍에 손을 넣는다. 무언가가 손에 잡힌다. 꺼내보니 쪽지이다. 소녀는 당황한다. 꿈에서만 상상했던 일이 일어난 순간이다. 남녀공학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로맨스. 소녀는 주변을 둘러본다. 누구지? 쪽지를 넣은 아이는 소녀가 평소 계속 바라보았던 남학생이었다. 두근두근. 다들 가슴속 로맨스가 있다. 어떤 영화보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교실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흘러간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 ‘잘 가요 로맨스, 잘 가요 내 아름다운 친구여’가 떠오른다.
다시 건물 중앙으로 갔다. 반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계단. 2학년 교실부터는 복도에 학생들의 책상과 의자가 4개씩 놓여있었다. 어떤 용도인지는 뻔하다.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이 앉아 있는 곳. 여전하구나. 역시 가장 변하지 않는 공간이 학교라더니. 20년 가까이가 지났지만 똑같은 방식이다. 4층까지 올라가 봐도 변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학생수가 줄어 반의 개수가 작아졌을 뿐. 올라갔던 계단을 다시 내려와 숙직실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다 봤냐고 물으셨다. 덕분에 잘 보고 간다고 간단하게 인사를 드렸다.
교문을 빠져나와 항상 다니던 뒷문으로 갔다. 학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나로 온전히 아름답게 있었던 공간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