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경 Nov 27. 2021

잔잔한 삶이 좋아지는...

잔잔하게 내리는 비 보다 세차게 내리는 비처럼, 한때는 특별하게 각인되는 사람이고 싶었다. 잔잔하게 내리는 비는 왠지 그냥저냥 한 사람 같아서. 특별한 것, 그런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계속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고, 그러자니 뭔가를 이루어내야 했다. 매번 하는 일에서 성과를 내야지 직성이 풀렸고, 남들보다 더 일하고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삼십 대 후반까지는 일만 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 아주 미세하게나마 알 것 같다. 모든 삶에는 의미가 있고, 꼭 특별해야 대단한 건 아니라는 것을. 꼭 어떤 것의 정상에 서야만 잘 산 인생은 아니라는 것을. 그 어떤 삶도 대단하지 않은 것은 없기에.

뭔가를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지인이 걱정하는 듯 물었다.

"예전에 하려 했던 거 안 할 거야? 쌓아놓은 거 다 놓을 거야?"

최근 뭔가가 뜸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 의욕적이게 보이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뭔가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좋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하겠는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 열정적이지 않다고 정의할 수 있을까? 꼭 성공해야 그 인생이 잘 산 것이고 열정적이었고, 가치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무조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을 하던 엄마에게 예전부터 말했다.

"엄마. 너무 일만 하지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아. 여행도 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이런 말을 하는 딸에게 엄마는

"지금 말고 나중에. 나이 들어서 돈 없어서 아픈데 치료도 못하면 안 되잖아."

라고 말했다.

며칠 전, 엄마와 통화하며 엄마가 말했다.

"화경아, 그때 네가 말한 거, 맞는 말인 것 같다. 지금 여행 가고 싶어도, 맛있는 거 하나를 먹고 싶어도, 건강하지 않으니 할 수가 없네. 한 시간만 차를 타도 허리 때문에 갈 수가 없고, 턱관절 디스크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그때는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지금 해라. 네 말이 맞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엄마는 허리가 안 좋아 잠시 차를 타는 것도 힘들어한다. 모아둔 돈을 병원비로 써야 한다. 돈이 있어 아픈데 치료는 하겠지만 그 아픈 곳이라는 것은 돈을 모으기 위해 생긴 곳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일로 얻은 병을 고치는데 쓴다.


이제는 예전처럼 일만 하며 바쁘게 살기보다는 좀 잔잔하게 삶을 느끼고 싶다. 그럼 몸도 혹사시키지 않겠지? 나는 모아놓은 돈도 없으니 나중에 아프면 골치 아프니까 좀 더 내 몸을 아끼며 운동도 하고 살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이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