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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Dec 27. 2021

삶의 끝, 그 뒤 남겨진 사람들.

죽음도 우리의 삶의 일부라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음에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명의 꺼짐은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어느 정도 생을 살았으니 이제는 갈 때가 되었지.라는 생각을 할 만큼의 나이에 생을 마치는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좋은 곳으로 가길 비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직 내가 감당하기가 벅차다. 아니 영원히 벅찰 것이다.


올해 봄, 중학교 시절 단짝을 보냈고, 며칠 전 나의 가장 오래된, 가족과도 같은 친구의 아버님과 남동생의 부고를 들었다.


어제 아침 비행기를 타고 친구에게 다녀왔다. 예상과도 같았다. 친구는 슬픔을 꾹꾹 누르며 자신이 슬퍼하면 엄마가 더 힘들 거라는 생각에 버티고 있었다. 친척 외에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나에게만 연락을 했다. 오지 말라는 말에도 나는 친구가 어떻게 있을지 알았기에 말없이 갔다. 잠깐이라도 데리고 나와 눈물을 받아주고 싶었다. 참지 말고 온전하게 슬픔을 슬퍼하길, 아픔을 아파하길 그래야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으니까.


모든 이들에게는 삶의 무게가 있다. 그 무게를 이겨내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혼자 짊어지기가 힘들 때, 그럴 때는 옆에 살짝 내려두거나 의지가 되는 이에게 잠시 덜어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다른 이에게 짐이 되기 싫어 혼자 버티다 보면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니까. 그럼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더 힘든 시간이 된다.


중학교 단짝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미워했다. 좀 더 자주 연락했어야 했는데, 아픔을 내가 알아차려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그 순간에는 그게 안 되었다. 점점 더 그런 생각들은 나를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했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했다.


누군가에게 말하다가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질까 말하지도 못하던 중, 내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를 살며시 꺼냈다. 사실 이런 일로 최근 힘들었다고.


친구는 말했다. 넓은 우주라는 공간으로 보면 우리는 원자로 구성된 존재이기에, 죽음이라는 것은 그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죽는다고 하여도 산산이 나뉘어 어느 곳곳에는 또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시간이 흘러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이런 말이었던 듯하다. 그때 그 말은 어떠한 위로보다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허무한 일이다. 누군가의 존재가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는 것. 그럼에도 남은 사람은 생명이 남아있기에 또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친구는 아버지와 남동생 일을 어떻게 하면 빨리 잊을 수 있을까라고 했지만, 애당초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슬픔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슬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억지로 잊으려 하지 않기를. 그 일이 그저 삶에 스며들도록, 그래서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겨나가는 방법일 듯하다.   


가족 이외에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은 손에 꼽는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현재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마음을 쓸 수 있길 바란다.


내가 그들에게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할 수 있기를. 더 자주 그들의 눈을 바라볼 수 있기를. 더 마음껏 안아 줄 수 있기를. 내가 바라보는 아침 햇살을, 반짝이는 별들을 그들도 바라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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