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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Jul 06. 2021

마중

가끔 미팅을 하러 나가, 집을 비울 때면  딸은

"엄마, 어디야."

하고는 집에 다 와갈 때쯤이면 지하철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첫 기다림은 코끝이 시린 겨울이었다. 한 여자아이가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바닥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추운 날 그것도 저녁시간에. 안쓰럽게 서있는 아이는 딸이었다. 나는 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도대체 언제부터 기다린 거냐고 왜 추운데 여기서 이러고 있냐며 혼냈다. 딸은 너무나도 해맑게

 "엄마 마중 나왔지."

라고 말했다. 아니 마중이라니. 얼마나 있었냐고 물으니 30분이라 했다. 나와 통화를 하고 지하철역으로 바로 나온 것이었다. 도착시간에 맞춰서도 아니고.

딸은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자신을 보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너무 속상해 첫마디가 언제부터 기다린 거였냐는 거였다. 아이의 차가운 손을 꼭 잡고는 나의 점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걸었다. 춥지 않냐는 말에 아이는

"엄마도 일한다고 힘들었을 거 아냐."

라는 말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줬다. 다시는 이렇게 무턱대고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하고는 고맙다 했다.


그 뒤에도 아이는  지하철 역에서 기다리거나  도착할 때가 되면 지하철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하루는 왜 이렇게 나오는 거냐고 귀찮지 않냐고 물으니 엄마와 집에 함께 들어가는 게 너무 좋단다. 아무리 그게 좋다고 해도 귀찮게 이렇게 마중을 나온다고? 솔직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도 역시나였다. 병원을 간다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방금 학교 마쳤다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 오냐는 말에 마트에 갔다가 집에 갈 거라 했더니  딸은 자신도 같이 가고 싶다며 마트 앞에서 보자 했다. 우리는 마트 앞에서 만나 장을 보고는 집으로 걸어갔다.

딸은 무거운 가방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었다. 가방을 들어주고 싶지만 나 또한 장 본 짐이 한가득이라 빈 손이 없었다. 딸은 얼마 전 길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쳐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어 걷기도 불편한 상황이었다.

"엄마, 오늘은 너무 힘들다."

라고 말하는 딸에게

"그러게 집으로 그냥 바로 가지. 왜 굳이 같이 가려고 했어. 걷기도 불편한데.."

라고 말했다. 다 컸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나이지만 딸은 아이였다. 뭐든 척척 다하고 나보다 더 어른처럼 생각할 때가 있어 내가 의지할 때도 많은 딸인데. 아직은 엄마와 함께가 좋은 13살 아이다.


다 알면서 더 다정한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 오늘따라 미안해진다.

오늘저녁엔 사랑한다 말하고 꼭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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