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봉지에 적힌 설명에 따라 물 양을 조절하고, 스프와 면을 넣고, 알려주는 시간만큼 끓이면 되는 음식이다. 요리를 못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음식. 실패할 확률이 별로 없는 음식.
이렇게 쉬운 라면을 친정 엄마는 정말 맛없게 끓이셨다. 그렇다고 엄마가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릴 적,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장면, 탕수육 등을 사주지 못할 때는 손수 만들어주실 정도로 웬만한 요리는 척척하시는 분이셨다. 그런 만능 요리사가 이상하게도 라면 세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의 맛이 원래 라면 본연의 맛인 줄 알았다.
우리 집은 한 달에 한 번, 특별식처럼 라면을 먹었다. 엄마는 라면 네 개 사와.라고 심부름을 시켰고, 다섯 개 사 오면 안 돼?라는 말에 다섯 개는 많아.라고 딱 잘라 말하며 정확하게 라면 네 개 값만 주셨다.
자주 먹고 싶지만 라면 값도 부담스러운 형편이었기에 한 달에 한 번도 감사했다. 라면 네 개를 양은냄비에 끓여, 다섯 식구가 둘러앉아 후루룩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식은 밥을 말았다. 더 자주 먹고 싶었던 그 맛!
중학생이 된 나는 엄마의 라면이 다른 사람의 라면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 학교 매점에서 친구들과 후루룩 나눠 먹었던 라면. 이런 황홀한 맛을 우리 가족은 이때까지 그렇게 먹었단 말인가?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는 라면을 이때까지 어떻게 그런 밍밍한 맛으로 끓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요리를 잘하는 엄마가?
하루는 궁금한 나머지 엄마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고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엄마는 물의 양을 눈대중으로 쟀고, 면 익히는 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면이 불 때까지 푹 익혔다.
"엄마, 여기 물 550ml라고 적혀 있잖아."
"응. 대충 눈으로 보면 알아."
"엄마, 면 익히라는 시간이 벌써 넘었는데."
"엄마는 푹 끓인 라면이 좋더라고."
엄마의 라면은 물의 양도, 면을 끓이는 시간도 지켜지지 않았기에 맛이 없었던 것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럴까? 물의 양도, 끓이는 시간도 다 지키는데, 이상하게 내가 끓이는 라면은 맛이 없다. 가끔 혼자 집에 있을 때 대충 점심을 때우고자 라면을 끓여 한 젓가락 맛을 보면
'내가 또 이 짓을 하다니....'
라며 속으로 후회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라면 하나를 차마 뱃속으로 다 들여보낼 수가 없다. 어떤 때는 니맛 내 맛도 안 나, 먹다가 혼자 성질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나는 라면을 안 끓이려고 한다.
최근 가장 많이 라면 끓이기를 부탁하는 사람은 아들이다. 같은 라면인데 왜 나와 아들의 라면 맛은 이렇게도 다를까? 나는 물도 정확히 재서 끓이고 면도 엄마처럼 푹 익히지 않는데. 왜 맛은 엄마처럼 없을까?? 이런 것도 유전인가? 그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그걸 핑계 삼아 아들이 끓여주는 라면을 계속 맛있게 얻어먹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