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부터 눈을 뜨기 힘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나의 사랑스러운 반려견 솜이 때문이었다.
늦은 오후 솜이를 목욕시키고 털을 말리는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알아차렸다. 어제 분명 이 아이를 빗질하며 털이 평소보다 많이 빠진다는 것을 인지했는데, 목욕하기 전 빗질을 하지 않고 그냥 목욕을 시킨 것이었다.
솜이는 털이 많이 빠지기로 유명한 직모 소유자 포메라니안이다. 평소에도 많이 빠지는데 어느 시기가 되면(아마 털갈이 시기겠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털이 쑥쑥 빠진다. 이렇게 빠지고도 여전히 풍성한 털을 가지고 있는 게 너무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솜이를 목욕시키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리며 허공을 바라봤다. 수많은 하얀 털들은 바닥에 가라앉지 않고 계속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5년 동안 솜이를 씻기고 드라이해보았지만 이렇게 휘날린 적은 처음이었다. 차마 숨쉬기가 무서울 정도였다고나 할까? 입으로 숨을 쉬면 입으로 털이 들어갈 것 같았고, 코로 숨을 쉬면 콧구멍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허공 중에 날리는 저 털들을 어떻게 치우지? 고민하며 털을 말리고 있는데 눈이, 코가, 입이 간질간질거렸다. 아~~ 털들이 얼굴로 떨어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내 손에 이미 붙어있는 털들이 수습불가로 얼굴을 뒤덮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드라이를 하고 있는 솜이를 놔두고 화장실로 가 얼굴을 씻는다면? 솜이는 소파 밑으로 들어가 털 말릴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아무리 간지러워도 그냥 참고 솜이를 다 말리고 난 뒤, 세수를 하는 것.
솜이를 다 말리려면 최소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꼼꼼히 말리지 않으면 피부병이 걸릴 수도 있기에 말이다. 간질거리는 얼굴을 최대한 참아야 했기에 일부러 인상을 쓰며 여러 가지 표정 변화를 시도해보며 어떻게든 버텨보았다. 다행히도 오늘은 솜이가 얌전히 잘 있어주어 말리는 데는 고생하지 않았다.
나는 임무를 완수하자마자 화장실로 직진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화장대 앞 바닥은 신기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허공 중을 떠돌던 털들이 한 뭉치, 한 뭉치씩 뭉쳐있었던 것이다. 물론 뭉쳐지지 못한 털들도 있었지만 뭉쳐진 털들은 그냥 손으로 쓱 집어 쓰레기통 속으로 넣으면 그만이었고, 뭉쳐지지 못한 털들은 청소기의 밥이 되면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눈에서 증상이 나타난 것이. 간질거리고 차마 눈을 똑바로 뜨기가 힘들었다. 아! 알레르기...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도 그 정도 털 날림이라면 증상이 나타날 것이다. 재빨리 알레르기 약을 먹고 두 시간 누워있으니 증상은 사라졌다. 오늘 저녁은 솜이에겐 미안하지만 구름이랑만 시간을 보내야겠다. 맞다. 나는 그렇게 털이 많이 빠진다는 포메라니안을 두 마리 키우고 있다.
구름이는 솜이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쌍둥이 남동생인데 구름이는 곱슬이다. 그래서 털이 잘 엉켜 일부러 짧게 잘라준다. 그래도 털 위를 걸어 다녀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그럼에도 난 이 아이들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