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렇게 한 해가 흘러간다. 불과 5년 전 만해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고, 나이 드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받아들인다. 나이가 들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히끗히끗 하얀 머리카락이 보이면 딸아이는 엄마가 나이 드는 것이 싫은지 보이는 족족 뽑아버린다. 제발 그냥 놔두라고해도 다른 엄마들은 뽑아달라고 난리인데 엄마는 왜 뽑지말라 하냐며 입을 삐죽거린다. 그럼 나는 나이가 들면 당연히 흰머리카락이 있는게 정상이지않냐고, 오히려 까만 머리카락만 가득하면 그게 더 이상 하지 않겠냐고 말하지만 그래도 싫단다. 계속 뽑히는 내 머리카락이 불쌍해 결국 나는 겨울에 염색을 했다. 그러니 이제 딸 아이는 더 이상 내 머리에 손을 대지 않는다.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면 사람도 그 만큼 성숙해야 하겠지. 마흔. 흐르지 않으면 고이고 고이면 썪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나이이다. 인생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나이가 되면 행동에 더 조심하고, 말 한마디도 더 생각하고, 그로 인해 아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올 한 해 나는 언제 가장 행복했었지? 찬찬히 생각해보니 항상 입가에 웃음꽃을 피우게 했던 순간이 있었다.
'오늘부터 에세이스트' 수업을 진행했던 여행인문학도서관 길 위의 꿈
벚꽃이 피는 봄 밤, 글쓰기 수업을 처음 배우며 매 순간 두근거렸다. 매주 수요일은 나를 행복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초 여름 어느 수요일 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나니 나에게 특별했던 그 수요일들이 다시 평범해지며, 다른 요일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졌다. 사람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계기로 나는 글쓰기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고, 간직할 수 있었고, 표현할 수 있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오늘부터 에세이스트' 수업 중
여행인문학도서관 길 위의 꿈
몇 시간 후면 새해가 밝아온다. 매년 다가오는 새해지만 내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또 나는 어떤 결정들을 해나갈 것인지. 다른 이들을 위한 결정 보다는 나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매번 그렇게 못하는 것이 나의 문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