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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Mar 02. 2020

당신은 진정 하브루타의 별이셨습니다.

전화기 건너편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예전에 우리 같이 수업도 받고 연구소 회의도 하고 했었잖아요.라고 말하며 우는데 나는 그저 네 네.라고만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전화는 끊어졌다.


멍하니 있다 딸에게 다가갔다.

"준희야, 혹시 너 예전에 헤브루타 가르쳐 주셨던 소장님 기억나?"

"응. 엄청 좋으셨잖아."

"맞아. 그랬지."

"근데 갑자가 왜?"

"그게..."

"설마 엄마. 코로나 걸리셨어?"

"아니. 그게 아니라."

왜 그제야 나는 눈물이 핑 돌았을까.

"소장님이 암이셨는데. 이제 다 나으신 줄 알았는데. 오늘 하늘로 가셨데..."

딸에게 그 말을 하고 나서야 현실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하브루타를 들여오신 현용수 박사님. 그분의 첫 수제자. 고 전성수 교수님, 오철규 소장님, 김정완 이사님. 이 세분이 함께 하브루타를 배우시고, 하브루타를 이끄는 과정에서 뜻이 맞지 않아 길을 다르게 가게 되었다고 하셨다. 결국 고 전성수 교수님은 우리나라 하브루타의 별로 칭송받으셨고, 오철규 소장님은 그러지 못하셨다.


오철규 소장님은 우리나라에서 하브루타라고 부르는 것을 헤브루타라 부르셨다. 결론적으로는 똑같은 것이다. 나는 오철규 소장님 직속으로 한동안 공부하며 연구소를 이끌어 가려했다. 이분과 함께라면 한국 교육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나에게 소장님이 특별한 이유는 사실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분이 나의 고민을 해결해주셨기 때문이다.


소장님과 일을 하는 도중, 딸이 만든 헤브루타 퀴즈를 들려드렸더니 초등학교 2학년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만들었냐며 직접 가르쳐보고 싶으니 데려오라고 하셨다. 누구도 받을 수 없는 특혜를 받은 딸. 그때 딸은 180도 달라졌다. 친구들과 소통에서 자신의 주장만 펼치던 아이. 매일 친구와 싸우고 울고 들어오던 아이. 그런 아이가 한 달 만에 달라졌다. 착한 아이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게,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말할 수 있게 그런 현명한 아이가 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후부터는 친구들과 싸우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 또한 그 당시 많이 배웠고,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점에서만 봐도 소장님은 나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분이셨다.


하지만 이상이 너무 크셨고, 그 큰 이상을 이루기에는 우리나라 엄마들은 입시에만 열을 올렸다. 이 일이 잘 되면 하고 있던 영어강사의 일을 접을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 벽을 같이 넘을 수 없었고,. 그 후 소장님은 암이 재발되며 건강이 악화되셨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문병을 갔을 때 많이 야위어 보이셨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이셨는데.


오늘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울고 계신 선생님.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대답만 할 뿐이었다. 허망했다. 큰 꿈을 품으신 분이셨는데.


현재 장례식장은 코로나로 위험한 곳이라 갈 수도 없어 전화 오신 선생님도 기도만 할 뿐이라 하셨다. 나 또한 기도만 드린다. 아직도 소장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한데. 처음부터 다시 일으켜 보자며 으쌰 으쌰 할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많이 외롭고 힘드셨던 분.


저에게 소장님은 진정한 하브루타의 별이셨습니다. 하늘에서는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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