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경 Mar 10. 2020

나는 워크홀릭이다.

나는 가벼운 워크홀릭이다. 사실 첫 문장은 '나는 워크홀릭이다.'였다. 거기에 '가벼운'이라는 글자를 다시 넣은 것일 뿐. 아마 결혼을 하지 않아 아이가 없었더라면 심각한 일 중독자가 되었을 것이다.

일을 시키는 회사 대표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반가운 직원이다.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시키면 바로 업무처리를 하니까. 반면 나 자신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다. 몸이 아파도,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업무를 끝내야 속이 시원하니까. 다행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문제이기도 하다.


시간을 정해놓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 같은 경우에는 퇴근을 하고 나서부터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일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결혼 전,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무역회사를 다닐 때였다. 처음으로 외국 회사들과 거래를 트기 위해, 밤과 낮이 바뀐 나라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그 당시 생소하던 메일 알림 서비스를 신청했고, 핸드폰으로 실시간 업무를 처리했다. 그 당시만 해도 실시간 메일 알림 서비스가 많이 활성화되지 않아 유료로 사용했던 시대였다. 사장님은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된다 했지만 성격상 나는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결혼 후,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는 집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수업시간 세, 네 배에 달하는 시간을 수업 준비로 사용했다. 경력이 쌓이면 괜찮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매년 수업하는 교재가 바뀌는 덕분에, 교재 연구와 교구재 만들기에 매일 전념해야 했다.

그렇게 거의 10년, 아이들을 가르치다 일을 그만두었다. 잠시 쉬어도 될 법 한데, 그 당시 나에게 소중한 한 인연이 다가왔다. 그 소중한 인연의 대표님 제의로  반년을 함께 일했다. 일주일에 두 번 출근을 했지만 나는 출근을 하던 안 하던 하루 종일 일을 했다. 그건 회사의 잘못도 아니고 일을 시킨 대표님의 잘못도 아니었다. 바로 나의 잘못이었다. 일의 분배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무조건 다 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했기에 밤이 늦어도, 새벽에도 아무렇지 않게 척척 처리했다. 내 생활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사정상 반년을 일하고 모든 것을 멈추기로 결정한 뒤, 나머지 반년을 쉬었다. 처음으로 말이다. 주부로서의 삶을 느껴보며, 나름 재미있었고, 갑자기 일이 훅 줄어든 것 같아 심심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올해 2월. 보컬 레슨을 배우러 다니는 회사 대표님께서 재택근무 제안을 하셨다. 업무내용은 내가 가진 재능을 다 써볼 수 있는 기회였다. 워드프레스 홈페이지 제작, 마케팅 자료 제작, 영상편집, 글 작성, sns 관리, 새로운 아이디어 등 등.  이  업무 역시 나는 시간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유튜브로 공부해 홈페이지 제작에 열 올리며 재미를 느꼈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마케팅 자료를 만들며 역시 창작만큼 흥미로운 건 없어 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렇게 한 달 반.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주말에도 나는 노트북을 켜고 일하고 있었다. 1주일 한 번의 회의를 하고 나면 바로 업무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그 일을 당장이라도 다 끝내야 하는 사람처럼 했고, 굳이 시키지 않은 것도 먼저 했다. 내가 대표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마치 쉬지 않고 일하는 일개미처럼.

그런 나에게 대표님이 말했다. 일요일은 일하지 마세요.라고. 그 전 대표님도 그랬다. 일요일은 쉬세요. 아무도 나에게 일요일에 일하라고 하지 않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결국 나는 나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정하기로 했다. 나 스스로 업무 시간과 그 외 내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을. 그래야 이렇게 글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남들이 봤을 때 재택근무니 자유롭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일일수록 더욱더 내가 일에만 얽매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아야 오래갈 수 있기에.


'초심을 잃지 마라.' 첫 직장에서 항상 들었던 말이다. 초심을 유지하려면 처음부터 너무 달리지 말라고. 처음에 너무 달리다가 지치면 '저 사람이 변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그렇기에 변함없이 꾸준히 가기 위해서는 속도 조절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때는 왜?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몇 가지의 일을 해보고 나니 알 것 같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그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일과 생활을 조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좋아하는 일도 오래 할 수 있으니까.

항상 어김없이 봄에는 꽃이 피듯. 변함없기 위해서는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욕조 안에서 글을 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