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경 Apr 02. 2020

밤벚꽃을 담다.

밤벚꽃을 처음 본 날을 잊을 수 없다. 까막한 밤, 벚꽃나무가 양 옆으로 줄지어 서 있던 곳. 바람이 불며 불빛에 빛나는 분홍빛 꽃잎들이 흩날리듯 바닥으로 내려 앉았다. 영화에서나 나올 듯 한 장면. 아직도 그 밤은 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봄이 되면 밤벚꽃이 보고싶다.


밤에 보는 벚꽃은 낮에 보는 벛꽃과는 다르다.

낮에 보는 벚꽃은 우선 햇살과 함께이니 생기가 돈다.  빨간머리앤에서 나오는 벚나무가 생각나며 '눈의 여왕'이라 이름을 붙인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길을 걷는 상상만해도 행복해지는 느낌. 오늘은 딸아이와 강아지들을 데리고 집앞 공원의 벚꽃길을 걸었다. 강아지들도 신이 나서 힘껏 뛰어다녔다.

 

아름다운 낮의 벚꽃을 보고나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밤 10시. 이번엔 아들의 어깨를 살살 흔들며 말했다.

"아들. 우리 벚꽂보러 나가자. 엄마, 밤벚꽃 보고 싶어."

"알았어요. 나가요."

아들은 흔쾌히 겉옷을 입었다.

역시. 밤벚꽃은 달랐다. 오묘하고 영롱하고 황홀했다. 아들은 낮에 보는게 더 예쁘지 않냐고 물었다. 달빛과 불빛이 만나 또 다른 빛을 만들어 벚꽃을 비추니 햇빛에 비쳤을 때의 아름다움과는 달라 밤벚꽃이 좋다 대답했다.


벚꽃을 바라보니 하늘에 있는 달도 보였다.

"들~ (아들을 부르는 나만의 애칭이다. 아들을 줄여 '들'이라고 부른다.) 넌 어떤 달이 가장 좋아?"

"음.. 보름달이 되기 전?"

"보름달이면 보름달이지 왜 보름달이 되기 전이야?"

"보름달은 너무 완벽하잖아요. 보름달이 되기 전 조금 부족한 듯한... 그게 좋아요."

"엄만...미소달이 좋은데."

"미소달?"

"엄마가 붙인 이름이야. 초승달. 미소짓는 입모양 같잖아. 손톱달이라고 사람들은 많이 부르지만. 엄만 미소달이 더 좋아."

그렇게 아들과 나는 팔짱을 끼고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이런 시간을 만드니 아들이 좋아하는 달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게 행복이겠지 싶다.

 


올해 밤벚꽃도 마음에 쏙 담았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슬퍼지는 이유는
잠시라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오지은,서영호님의  <404> 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을 때 가사에 공감했었고, 그래서 더 슬퍼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가사가 슬프지 않다. 마음속에 담는 법을 알게 되었기에. 벚꽃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가질 수는 없지만 볼 수는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워크홀릭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