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간 유, 초등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왔다. 작년부터는 그 일을 그만두었지만 말이다. 유치원 아이들은 영어나라에서 오신 선생님 혹은 우리나라 사람 아닌데 어떻게 한국말을 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했었고, 초등 아이들은 선생님은 원래 영어를 잘 한 사람이었죠?라고 물어왔다. 그럴 때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웃음으로 답변을 했지만, 초등 아이들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원래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잘 못했던 사람도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에 말이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이들.
부산 한 초등학교 방과 후에서 일할 때였다. 그날도 고학년 아이들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선생님은 영어를 잘하니 좋겠어요. 부러워요."
"너희들, 선생님이 원래 영어 좋아하고 잘해서 영어 선생님 된 것 같지?"
"맞잖아요."
"아닌데. 선생님 시대에는 영어를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는데, 그때 이미 아이들은 알파벳과 영어단어를 다 알고 중학교 입학했거든. 너희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다 알던 것처럼."
"와~ 진짜 늦게 했다. 우리도 그때 하면 좋겠는데."
"선생님은 그때 알파벳도 다 몰랐어."
순간 교실이 싸~해졌다.
"거짓말. 우리 힘내라고 하는 거짓말이죠?"
"나도 거짓말이면 좋겠다."
사실이었다. 나는 중학교를 들어가 알파벳을 익혔고, 아이들이 교과서에 있는 문장을 읽을 때 apple을 외웠다. 내가 너무 외우기 어려웠던 단어는 girl. 마지막이 rl인지 lr인지 너무 헷갈리는 거였다. 그때 r과 l의 발음이 어떻게 나는지만 알았어도 그리 힘들지 않았을 것을.
학교에서는 당연히 다 학원에서 배우고 왔지?라는 식으로 기본을 뛰어넘었고, 아이들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며 아무렇지 않게 교과서를 읽어갔다. 나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고, 학교 시험은 봐야 했기에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교과서를 그냥 암기해서 시험을 쳤다. 영어라는 것은 외계어였고, 그럴수록 영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문제는 학교 시험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위한 시험. 인문계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시험인 연합고사. 지금은 사라진 시험이다. 난 꼭 인문계를 가야 했는데,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영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학교 시험 보듯 교과서를 외우는 식으로는 시험을 볼 수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중 3 여름방학, 돈 없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학원을 보내달라고 생떼를 썼고, 며칠을 떼쓴 결과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바로 단과학원으로 가 동생들이 듣는 성문 기초 영문법 반을 끊었다.
성문기초영문법 책.
중 3 때까지 am, are, is가 어디에 붙는지도 몰랐기에 말이다. 지금이야 수준별 학습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영어 수업을 듣지만 그때는 같은 학년이 아닌 동생들과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나는 그 수업을 3개월 들으며 미친 듯 공부했고, 그 뒤에야 같은 중 3 아이들과 수업을 들었다. 고등학교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새벽 1시 전에는 자본 일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능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
모르면 처음부터. 기본이 다져져야 그 윗 단계를 갈 수 있다는 것. 그때 알았다. 기본을 알고 나니 영어가 그리 힘들지 않았고, 내가 가고자 했던 대학의 과를 지원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부모님의 반대로 도전 한 번 하지 못하고 나는 꿈을 접었다.) 나는 영문과를 지원했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해서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고등학생의 평균 수준이었지만 가고 싶은 과가 없었기에 그냥 지원한 것이었다.
결국 영문과를 들어가게 되었고, 나름 돈을 벌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가서 짧게라도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다.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 있었던 어학연수 나라는 필리핀과 호주였다. 호주는? 돈을 감당할 수 없었고, 필리핀이라면 몇 개월 아르바이트로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02년 한 해. FIFA 월드컵 경기장에서 기념품 판매 아르바이트를, 백화점에서 수영복 판매 아르바이트를, 2002 아시안게임 통역 봉사(이건 자원봉사라 소정의 금액만 받았던 것 같다.)를 했다. 모든 것을 끝내고 그해 가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필리핀으로 떠났다. 다행히 나 같은 아이에게 1:1 수업을 하는 필리핀은 딱이었다.
지금도 영어를 잘하지는 못한다. 영어를 잘해서 영어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도 아니었다.
몇 년 전 유치원에서...
내가 영어 선생님을 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나 같은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서. 못 해도 괜찮다고. 그리고 내가 접근했던 것처럼 지루하게가 아니라 재미있게 알려주고 싶었다. 무조건 달달 외우며 무식하게 공부하던 나의 시절과는 다르게. 이런 이야기를 쭉 들려주니 아이들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유전자를 타고나고, 원래부터 뛰어난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땐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래서 그걸 깨 주고 싶었다. 지금 못해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유치원에서 수업을 할 때도 그랬다.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건 내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보다 영어로 잘 놀 수 있어서라고. 그러니까 너희들은 영어로 나와 잘 놀면 되는 거라고. 정말 고맙게도 아이들은 나의 이런 마음을 잘 알아주었고, 재미있게 영어로 놀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어를 읽고 문장을 읽게 되면서 영어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 역할은 거기서 끝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학원을 다니게 되면 여느 아이들처럼 단어 30개를 외우게 될 테니. 그래도 처음부터 영어에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테니 나보다는 낫겠지 싶다.
선생님이란 사람은 꼭 공부를 월등히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해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모르고 아이들 마음을 모른다면 자신만의 지식일 테니까. 나는 아이들보다는 영어를 잘 하지만 외국 방송을 들으며 웃을 수는 없다. 그 정도 실력은 아니니까. 학벌을 중시하는 부모님이 아이를 맡기고 싶어 하는 그런 교사는 못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공부 잘하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고 있으니까.영어를 못했기에 처음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알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안다.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있다면 문제없다. 우리가 가진 지식보다 컴퓨터가 가진 지식이 더 많은 세상이 오며 어차피 사람은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