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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Mar 14. 2020

딸아이가 엄마 모드로 변신했다.

딸아이가 갑자기 엄마 모드로 변신했다. 내가 아플 때마다 변신하는 신기한 존재.


에취~에취~ 비염이었다. 비염은 코로나로 의심받기 딱 좋다. 하지만 비염은 기침이 아니라 재채기다.


며칠 동안 비염으로 고생했다. 그러다 이틀 전, 정점을 찍었다. 어찌나 재채기를 많이 했던지 두통까지 따라온 것이다. 숨은 쉴 수 없고, 머리는 아프고.

배가 너무 고파 낮잠에서 깬 나는 주방으로 갔다. 그때부터 딸의 엄마 모드가 시작되었다. 먼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반찬이 없으니 그냥 김이랑 파김치로 먹겠다 하니 뜨거운 밥을 한 공기 퍼주고는 김과 파김치를 꺼내 주었다. 한 그릇 뚝딱!

"나 좀 더 줘."

그리고 한 그릇.

"나 한 그릇만 더."

세 그릇을 먹었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나 보다. 잘 먹는 나를 보고는 뿌듯해하는 아이.

"우리 엄마 잘 먹네. 그래 아플 때는 무조건 잘 먹어야 되는 거야. 또 먹을래?"

아... 벌써 세 그릇인데.

"아니. 엄청 배불러."

"그래. 그럼 물 마셔."


딸이 따라 준 물을 마시고 잠시 일을 할까 하니 엄마 모드로 변신한 아이가 극구 말렸다. 어쩔 수 없이 방으로 가 온수매트 위에 앉았다. 잠시 책을 읽고는 스르르 다시 잠이 들었다. 두 시간쯤 뒤, 부엌에서 달그닥 달그닥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딸아이는 걷은 옷자락을 내리고는

"내가 설거지했어. 그리고 내가 비염에 좋은 음식 검색 좀 했는데 일단 밀가루나 튀긴 것처럼 기름진 건 먹지 말래. 그리고 생강차가 좋데. 그래서 생강차 방금 끓여서 보온병에 넣어놨어. 이거 좀 마셔봐."

진짜 엄마 모드다. 갑자기 존댓말은 사라지고 엄마처럼 말투가 바뀌었다. 아이가 끓여 준 생강차를 다 마시고 뒹굴거리다 저녁잠을 잤다.

뒷날, 그러니까 어제였다. 눈을 뜨자마자 아이는 괜찮냐고 물었다. 조금 나아졌다 하니 미소를 짓는다.


아침, 점심, 오후가 되어서도 말끔히 좋아지지는 않는 비염으로 결국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니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이렇게 좋아질 것을 코로나로 병원이 더 위험하니 안 갈 거라고 며칠 동안을 혼자 에취 에취 거렸다니...


괜찮아진 나를 보며 딸아이가 말했다. 전 날 자기 전에 세상의 모든 신들을 다 불러서 기도 했다고.

'엄마만 나을 수 있다면 평생 제가 좋아하는 떡볶이 안 먹어도 돼요.'

라고 했다며 신이 자신의 말을 들어줬다고 너무 다행이라고 말이다.

어쩜 어릴 적 나와 똑같은지. 아니. 한번쯤은 다들 이런 경험이 있을거다. 어릴 적. 세상의 모든 신들을 소환해 소원을 비는 일.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엄마가 빨리 낳게 해 주세요. 그럼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집안일도 투정 없이 할게요."

그래도 나는 떡볶이는 안 걸었는데.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귀여웠다. 저 조그마한 아이가. 이제 12살이지만 다들 10살로 밖에 안 보는 아이인데. 하는 짓은 다 큰  어른이다.


우리는 아이를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생각보다 아이는 더 크게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내가 아파도 아무것도 안 해주는데요. "

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면

아플 때는 먼저 해달라고 말해보길 권한다.


엄마들이 서러울 때는 자신이 아픈데 아이들을 돌보거나 밥을 해야 하거나, 집안일을 해야 할 때니까. 평소에도 같이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아플 때만이라도 남편이 해야 하고, 아이들도 해야 한다. 혼자 끙끙대는 건. 해봐서 알지만 못할 짓이다.


그렇게 해봐야 엄마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
당당하게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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