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갈 때마다 내 눈에 아른거렸던 책. '설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표지가 슬퍼 보여 계속 눈이 갔다. 왠지 그 날은 책을 한 번 펼쳐봐야 할 것 같았다. 잠깐 벽에 기대에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스무 장을 훌쩍 넘게 읽고 있었다. 가끔 그런 책이 있다. 이 책은 사서 봐야겠다 하는 책. 이 책이 그랬다. 그렇게 내 책장에 꽂히게 되었지만, 선뜻 꺼내지는 못했다. 답답한 책꽂이를 탈출하게 된 건 책장에 꽂힌 지 석 달만이었다. 아끼고 아껴두었던 책은 순식간에 나를 다시 휘어잡았다. 이렇게 빨리 읽힐까 봐 아까웠나 보다.
읽는 도중 알았지만, 이번에 중학교 들어가는 아들의 독후감상문 권장도서에도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요즘 아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먼저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부모들. 그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다.
읽는 동안 너무 현실적인 모습들에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런 현실이 막막해 울기도 했다.
설이나 다른 아이들에게는 웃어라. 너희가 진정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라.라고 말하는 곽은태 선생님. 하지만 그분도 어느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모습일 때는 다른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에게는 네가 진정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 태어났으면 감사히 생각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그럼 설이 같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그냥 웃으며 놀고 싶은 거 하며, 대충 공부하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설이는 나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쳐 주었다. 곽은태 선생님에게 내가 생각한 것처럼 말해주었다.
결국 곽은태 선생님은 설이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깨닫게 되며 아버지 학교에도 다니며 노력한다. 안타까운 건, 너무 현실적이게도 끝까지 공부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설이를 사랑으로 키워 준 보육원 이모는 다르다. 설이가 거친 말을 해도, 이모를 흘겨보아도 괜찮다고 한다.
"그런 거 다 애 때 하는 거야. 어릴 때 그렇게 하고 어른이 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설이에 대한 믿음이었다. 설이에게는 나침반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처음에는 많이 흔들리지만 결국 옳은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설이도 항상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풍족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곽은태 선생님의 가정에서는 자유와 함께 생각까지 포기해야 한다. 그저 그들이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해야 한다. 반면 문제집 한 권 살 돈도 없고, 여러 명 앉기에도 비좁은 이모집은 불편한 것으로 가득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믿음이 있다. 넌 잘할 것이라는 믿음.
설이의 내용을 다루자면 다양한 부분에서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부모로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를 생각하는 부분만 살짝 적어보았다.
당신이라면 어느 집에서 살고 싶은가? 곤란한가? 하지만 꼭 인생에는 이 두 가지의 집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세 번째 집은 어떤가? 풍족하진 않아 불편함은 있지만 생계를 고민할 정도는 아닌 집. 적당한 자유를 주고 생각을 존중해주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집. 이 정도라면 살기에 좋지 않을까? 중요한 건 이런 중간 정도의 집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지만.
내가 자란 집은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집이었기에 세 번째 집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세 번째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