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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Nov 14. 2019

끝나지 않은 여행 1

-사십춘기에 떠난 여행-

“여행을 싫어하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내게는 여행의 기억이 많지 않다. 결혼 전 어학연수와 해외 인턴십. 결혼 후 몇 번의 가족 여행. 그것이 전부였다. 고단한 38년의 삶은 내게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가 있었다. 강원도 양떼 목장. 어린왕자 애호가인 나는 어린왕자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사막여우, 별, 장미, 보아뱀 그리고 양. 탁 트인 초원에서 뛰어노는 양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20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바쁘다는 자기 합리화로 나는 여행치가 되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는 마음속에 그대로 묻히는 듯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래. 더 늦기 전에 떠나자.


  아침 9시. 몽촌토성으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양떼목장과 몽촌토성. 두 곳은 닮았다. 넓게 펼쳐진 초원. 그 초원은 하늘과 맞닿아있다. 언제부터인가 힘들 때마다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 가면 하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살인적인 더위가 딱 맞는 표현인 듯했다. ‘이런 더위에 그늘 없는 몽촌토성에 왔어야 했던가.’ 후회를 하려고 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호수와 드넓은 들판에 반해 후회를 접었다. 고요 속에서 작은 음악회를 하고 있는 새와 매미. 관객은 나와 바람에 속삭이는 풀이다. 마음을 여니 그동안 외면한 자연의 소리가 들렸다. 몽촌토성에 왔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몽글몽글한 언덕 위로 벤치가 보였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맞추어 벤치 등받이에 반대로 걸터앉았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하늘을 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햇살이 밉지 않았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단순히 넓은 초원과 양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에 오래 고여 있던 장소. 하늘이 닿아있는 그곳에서 이제껏 내가 외면하고 살았던 것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예매한 표 시간에 맞춰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양떼목장행 버스가 도심을 빠져나가자 창문 밖으로 여태껏 보지 못한 넓고 넓은 구름들이 보였다. 과연 이때까지 나는 무얼 위해, 누구를 위해 살아온 것일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왔던가? 나는 지난 12년 동안 엄마였을 뿐, 김화경은 아니었다. 나를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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