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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Nov 14. 2019

끝나지 않은 여행 2

- 사십춘기에 떠난 여행 -

  3시간이 지나서야 강원도 횡계 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강원도는 우리나라가 아닌 듯했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시원한 곳이 있었다니. 대형 에어컨을 틀어놓은 듯했다. 별 기대 없이 들어선 식당에서 구름을 삼키는 듯한 순두부를 먹었다. 기가 막힌 맛. 그것은 뜻밖의 행운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식당을 나서자 비가 쏟아졌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한 펜션으로 갔다. 펜션에 도착하니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다. 하얀 나무로 된 벽에 갈색 지붕. 정원에는 2인용 그네가 비에 젖어 있었다. 저기 앉아 책을 읽으면 참 좋았을 텐데...아쉬웠다. 방 안으로 들어가 창문 밖을 보았다. 산 위에는 구름이 잠시 쉬어가듯 내려앉아 있었다. 내 마음도 조금 놓이는 것 같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법정 스님의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펼쳤다.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우리 인간들은 둘 다 가지려 하다 보니 항상 문제가 생기는 듯하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신이 아닌 인간이겠지만. 스님의 잠언을 오래 곱씹다 책을 덮었다. 

 

  오랜만에 영화나 볼까? 아이피 티비를 검색하다 ‘안녕 나의 소녀’라는 대만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 주인공 정샹이 고등학생 시절 좋아했던 여자 주인공 은페이와 38살에 재회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국으로 떠나지만 밝은 미래는 잠시 뿐이다. 꿈과 점점 멀어져가는 은페이. 정샹은 은페이를 위로해주지만 좌절감에 빠진 그녀를 죽음으로부터 막지는 못한다. 세상을 등진 은페이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는 정샹. 그런 그에게 거리를 떠도는 한 할머니가 신비한 꽃을 준다. 그 꽃은 정샹을 1997년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단 3일만이다. 정샹은 그녀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면 그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연히 찾은 영화는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1997년, 그 시절은 처음 내가 꿈을 품었던 시절이었다. 죽을 때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 뮤지컬 배우.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매일매일 상상했었다. 당시 내게도 은페이처럼 꿈을 나누었던 소년이 있었다. 석 달 남짓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소년과 나는 먼 미래의 특별한 비밀을 편지로 나누었다. 오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어려서라고 해야 할까. 어느 순간부터 소년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뿐 아니라 말도 나누지 않게 되었다. 이후 나는 그 누구와도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며 회상도 끝났다. 1997년, 그 꿈의 시절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기에 내 보물 일기장에 꽁꽁 숨겨놓고는 함부로 꺼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꿈에서 멀어진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생각들에 잠들기 싫은 밤이었다. 시간을 조금 더 부여잡고 싶었다. 하지만 밤은 야속하게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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