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두니 Jan 03. 2022

터널 속 경관조명 팡팡!

살아갈수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 말인즉슨 '마음의 평화는 받아들이는 데서 온다'.


지난여름 콧바람을 넣으려고 청도에 갔습니다. 거기 예쁜 카페들이 많거든요. 대형 신상 카페에 들어가니 앉을자리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파로 득실득실했어요. 아무리 좋은 전망에 멋진 인테리어, 향긋한 커피가 있어도 사람이 너무 많으니 정이 가지 않았어요. 사람이 많으면 감흥이 반감되는 정도가 심한지라 인적이 많지 않은 곳을 선호하거든요. 날은 더워 야외 자리로 나갈 수도 없고 답답한 채로 앉았는데 마음을 간파한 남편이 한마디 딱 건네는 거예요.


갑갑한데 바다 보러 갈래?

바다?!!


청도는 이미 집에서 한 시간 달려온 곳이지만 늦은 시간도 아니고 못 갈 이유가 없었지요.


콜! 가자!


청도에서 기장을 향해 달렸습니다. 기장엔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는데, 길눈이 꽤나 밝은 편인 제 눈에도 처음 가보는 길 같았어요. 도로 상태며 차선이며 난간, 가로등까지 죄다 새로 한 것 같더군요. 검색해 보니 새로 생긴 고속도로였어요.

어쩐지.


도로는 산을 뚫어 연결되어 있었어요. 지도상의 위치를 가늠해보면 뚫린 산들은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산들일 겁니다. 산과 산을 잇는 고가도로에, 터널이 끝나면 연이어 또 터널이 나왔어요. 아무 생각 없이 네비가 시키는 대로 새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산에게 미안해졌어요.

도로 공사를 한다면 반대하는 측도 있고 환영하는 측도 있겠지요. 저는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는 주의예요. 산을 돌아가더라도 그게 경제손실이 더 되더라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정확한 환경영향평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런 생각과는 맞지 않게 뚫린 도로를 달리고 있었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은 없었지요.


한 터널을 지날 때였습니다.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어요. 터널이 이렇게 길 수가 있나? 싶을 만큼 길더군요. 긴 터널을 지날 때면 잠자고 있던 두려움이 깨어나요. 뉴스로 영화로 안 좋은 예를 너무 많이 봤으니까요.

산을 횡으로 길게 뚫었나 보다. 이렇게 산이 많으니 우리나라 터널 기술이 그렇게 뛰어난가 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터널 속을 달렸습니다.


길고 긴 터널의 끝이 언제 나올까, 하는 순간 파란 조명이 터널 안에 가득했습니다. 경관조명이었어요.

와!! 예쁘다!

긴 터널에 몇 차례나 경관조명이 불을 밝히고 있었죠. 처음에 몇 개는 놓치고 그다음부터 영상으로 담았어요. 파랑, 빨강, 보라, 초록으로 밝힌 아치 천장과 벽에 여러 가지 무늬들이 들어가 있어 순간 꿈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을 주더군요. 다가올 예쁜 경관조명을 기대하며 가다 보니 터널이 길어 지루하다, 멀다, 답답하다, 두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인생이라는 긴 터널에 이런 경관조명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겁고 아름다운 경관조명과 같은 순간들이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에도 희망이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해 줄 거예요. 그러니 우리 인생 곳곳에 경관조명이 팡팡 터지도록 적절히 배치해야겠지요. 기쁜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더 중요한 건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그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순전히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니까요. 여기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린 것이라는 진리로 귀결되더군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마찬가지예요. 이 터널이 끝나고 밝은 세상으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생 전체를 긴 터널로 볼 수도 있지요. 어떤 경우라도 경관조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요. 무진장 긴 이 터널의 이름은 '재약산 터널'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이라는군요.


기장까지 정말 빨리 도착했어요. 산을 뚫고 왔으니 당연하죠. 요기를 하고 노을 지는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재약산 터널의 경관조명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목적지가 청도가 아니었기에 다른 길로 왔답니다. 산을 뚫은 데 미안해하던 마음은 증발되고 경관조명만 눈앞에 아른거렸네요.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들의 유혹은 이렇게 떨치기 어렵습니다.

 

새해가 밝았고 작심 3일째입니다.

우리가 구획지은 날짜 속에서 작심을 몇 번 반복하건 시간은 끝없이 같은 속도로 흐릅니다. 인생이라는 긴 터널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타고 근사한 경관조명 팡팡 터트리며 멋지게 달려갑시다.  


재약산 터널 경관조명  by duduni






이전 11화 AB형들의 모임 -3Z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