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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May 31. 2022

로또가 쏘아 올린 드라이브_ 포항 스페이스 워크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휴일이었다. 우리 동네는 나들이 코스가 빤하다. 동서남북으로 외곽지인 청도, 가창, 화원, 영천, 군위 등지나 조금 더 쓰면 경주, 포항, 부산 일대.


이날은 근교인 가창이었다. 며칠 전 맛본 상하목장 아이스크림 커피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같은 카페 새 지점이 가창에 새로 오픈했다니 카페 탐방을 즐기는 내게 좋은 핑계였다.


가는 길에 남편이 로또 한 장을 건네며 맞춰보라 해서 확인을 했다.

5등? 우와아! 5천 원 당첨! 로또 됐다! 와아아! 이게 웬일.

- 오늘 너무 좋은 날이다! 로또 5등도 되고 아이스크림 커피도 마시고.

- 5등은 빼고 그냥 로또 된 걸로 하자.


기쁜 마음으로 도착한 카페엔 예상대로 주차장부터 자리가 없었고 건물에 들어서자 높은 층고로 웅성대는 소음이 몇 배로 증폭되어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기분이었다. 덥지만 트인 야외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고 커피가 나오는 동안 자칭 '부부 카페 평가단'답게 눈에 거슬리는 부분을 지적질했다.

-이 뷰에 저 고압선 전깃줄 어떡할 껴. 안타깝네. 촛불 켜고 있을 수도 없고 참.

-관리가 안되긴 했는데 조화 아니고 생화를 배치한 건 마음에 든다. 저 시든 잎 좀 떼주고 싶네.


품위?를 잃지 않는 선에서 칭찬을 가장한 디스를 때리며 사뿐히 씹어댔다. 그러고 나온 아이스크림 커피! 올여름 이 커피를 줄기차게 마실 것 같은 예감. 커피가 바닥을 보인다는 건 나들이가 곧 종료된다는 것.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쉬운 여유로움과 시간.

photo by duduni


- 이런 날 바닷가 드라이브 쫙 하면 좋은데.

남편의 이 한마디는 2차의 화살을 쏘아 올렸다.

- 그럼..... 포항 가서 드라이브 한판 쫙 하고.... 물회?

- 결국 물회 먹으러 가자는 거네.

- 아뉘. 드라이브지. 간 김에 물회 먹는 거고.

- 물회 맛집 검색하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폰에 코를 박고 후다닥 검색을 했고 그렇게 포항으로 향했다.

<띵똥. 하이패스 요금 4천 OOO원이 지불되었습니다.>

- 로또 5천 원 날아갔다.

 

와!! 바다다!!

브레이크 타임에 걸린 맛집에 자리 등록을 해 두고 바로 앞 바닷가를 걸었다. 비릿한 바다내음에 시원한 바람. 멀리 포스코의 굴뚝이 영화 세트장처럼 펼쳐져 있었다. 30도 넘게 내리쬐는 햇살에도 그늘에서 바람을 맞으면 금세 더위가 가셨다. 이래서 5월, 5월 하는 가보다. 머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걱정거리들은 덮어두고 그 시간만큼은 편안하고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물회와 매운탕 국물을 먹었다. 아이들 먹을 물회는 따로 포장 주문했다. 보냉 가방 값을 더 지불해야 한다기에 그렇게 했다. 보냉 가방을 차에 실으며 오간 실없는 대화.

- 가방만 주고 아이스팩 안 넣은 거 아니겠지?

- 설마. 넣었겠지.

- 집에 갔는데 안 넣었으면 나 바로 포항으로 튕궀는다.

-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엉! 왕복 싸대기 짝짝!

- 고마하자.

- 마이 했다 아이가~~

아이스팩이 들어 있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하면 될 텐데 아무도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그대로 차에 실었다.


포항까지 왔는데 이대로 집에 갈 순 없지. 새로 생긴 핫플 스페이스 워크에 가 보기로 했다. 300m가 넘는 철제 계단이 높이 57m까지 뒤엉킨 조형물이라는 기사를 봤다. 사람이 많다는데 대기 줄 길면 그냥 보고 오기로 하고 네비를 찍었다. 바로 근처였다. 환호공원에 주차를 하고 나지막한 산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니 동산 위에 스페이스 워크가 있었다.


때는 6시경. 생각보다 북적대지 않아 다행이었다. 철제 구조물을 탁탁 올라가는데 좌우로 휘청휘청 흔들렸다. 어어어? 흔들림을 처음 감지했을 때 살짝 두려움이 있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휘어진 길을 계속 오르는데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바닷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정말이지 속이 다 시원했다! 와!! 너무 좋다! 걷는 내내 내면의 소리를 지르며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바람은 미친 듯이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펄럭펄럭 날렸다. 하늘 나는 슈트만 있으면 공중으로 펄쩍 뛰어내려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싶었다.


가운데에 롤러코스터처럼 360도 휘어지는 구간이 보였다.

- 저긴 어떻게 가는 거야?

- 못 가지. 물리적으로 갈 수가 없지.

가까이 가니 역시 갈 수 없게 막혀있었다.

-   갈 수 있는데. 다다다다 쎄게 뛰어서  한 바퀴! 그러다가 중간에 뚝! 

- 떨어졌는데 밑에 텀블링 띠용용용! 있으면 완전 재밌겠다.

- 1절만 해라.

내려오면서도 우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 와! 여기 진짜 괜찮았다. 포항 오면 강추!

- 무료에다 뷰도 좋고 엄청 시원하고.

노는 건 참 쿵짝이 잘 맞는다.


꼬인 길은 재밌다 여기고, 힘든 오르막이 나오면 편한 내리막도 있을 거라 마음 다잡고, 흔들리면 리듬 타며 적응해버리고, 발밑이 훤히 내려다보여 아찔할 땐 발을 탕탕 구르며 바닥의 철망을 믿어보고, 높이 올랐을 땐 실컷 바람 느끼며 마음껏 즐기고, 한 철탑에 오른 소중한 사람이 잘 오고 있는지 수시로 눈 맞추며 확인하는 것. 스페이스 워크는 인생길을 닮았다.


여행이든 나들이든 계획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데서 좋은 점을 발견하면 더 좋지 않은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숲길 산책도 하고 우주 공간에 서 있는 느낌도 받고. 바다도 보고 바람도 맞고. 물회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로또 당첨도 된 김에 즉흥적으로 떠난 나들이를 알차게 마무리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어야지 싶다. 근심 없는 날을 기다렸다간 평생 아무 데도 못 갈 거다. 질척거리며 들러붙는 근심을 한 구석에 잘 싸 두고 못 본 척하는 것도 필요하다. 즐길 수 있는 때에 몰입하여 즐기는 거다. 유치하고 실없이 허허허 웃으며. 웃을 일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photo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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