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두니 Jun 16. 2022

세상엔 두 종류의 엄마가 있다

D-여섯 달

저 녀석은 고생 좀 해봐야 한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깨져도 봐야 뭘 좀 깨닫지. 이때까지 얼마나 편안하게 살았는지 가보면 알 거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싶다.



D-두 달

이제 머지않았다는 것이 본격적으로 느껴진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붕 뜬 기분.

무엇을 해도 안정되지 않는다. 허깨비가 된 듯하다.

뺄 수 있으면 빼내고 싶다.

꼭 그렇게 갇혀서 고생을 시켜야 하나.

높은 것들은 어떻게든 빼내려고 별짓을 다 하는데.

휴학하고 아무것도 안 하며 허송세월 보내면서 기다리는 이 시간도 아깝다.

귀한 청춘의 나날을 이렇게 허비하다니 이 무슨 인생의 낭비인가.

아이도 이왕 가야 할 거 차라리 빨리 갔으면 좋겠단다.

자긴 잘할 거고 걱정할 거 없단다.

날짜 받아놓고 기다리는 건 피를 말리는 일.

우선 내 마음부터 단단히 다져야겠다. 눈물바람 할 게 뻔하다.



D-일주일

한순간 담담해졌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버티던 둑이 녹아내린 것 같다.

신기할 정도로 그저 받아들여진다.

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 계제가 아니니.

들끓던 마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순 가라앉았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이는 수시로 허공으로 발을 차댄다.

나와 다르게 점점 들끓기 시작한 거다.



D-사흘

바닷가로 갔다.

엄마 아빠랑 여행 가고 싶다기에.

책길을 걷고 등대와 드라마 촬영지를 가 보고 맛있는 것도 먹기로 했다.

자신이 찾은 식당으로 가자며 폰을 보여준다.

검색어가 '부모님 모시고 갈만한 식당'이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간다 생각했는데,

아이는 우리를 모시고 간다 생각했나 보다.

새삼스럽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D-day

차분하게 출발했다.

준비물을 챙긴 가방과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을 들고 까까머리를 한 채.

우스갯소리를 하던 차에서와 달리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서부터 아이 표정이 어두워진다.

숙인 고개와 모자챙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눈을 끔뻑이며 참는 게 느껴진다.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아 보인다.

소주 몇 잔 먹고 싶단다.

따라줬다. 달게 마신다.

시간이 남았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 얼굴은 말을 못 붙일 정도로 침울하다.

짜증 난단다. 억울하단다.

솔직한 심정이다. 어찌 안 그럴까.

토닥거리며 신병훈련소로 들어간다.


환영식을 대면으로 한다고 차를 들여보내 준다.

까까머리들과 가족들이 착잡하게 걷는다.

한마음으로 그저 따라 걷는다.

아이들과 가족들은 연병장과 스탠드로 분리되었다.

아이들은 긴장한 채로 연병장에 서 있다.

모두 표정이 없다.

가족들도 표정이 없다.

팽팽한 긴장과 애달픈 슬픔이 뒤엉켜 숨통을 꽉 막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짙은 안개처럼 내리누르며 어서 숨 쉬라고  받아들이라고 순응을 종용한다.


차렷, 열중쉬어, 경례를 가르치고 따라 한다.

잔뜩 긴장한 아이들은 착착 잘한다. 그게 더 안쓰럽다.

애써 감추며 손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친다. 이토록 안타까운 박수가 있다니.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슬픔도 커진다.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줄을 서서 조교를 따라간다.

이제 마지막이란다. 인사를 한다.

손을 흔들고 마스크 속에서 환하게 웃어주었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핑.

눈물이 돈다.

눈을 깜빡여 눈물을 밀어 넣는다.


이제 잘 지내길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뭘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아이가 재수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그때보다 10배는 힘들지만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건 같다.

그런 작은 경험을 해서인지 더 담담하게 받아들여진다.

돌아오는 길,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엄마 대신 비가 훌쩍훌쩍 울어준다.



D+아흐레

군대 보낸 사람들이 가입하는 더 캠프 앱에 하루 몇 번씩 들락거린다.

사진 한 장이 올라와 있다.

수많은 아이들 중 우리 아이를 찾는다.

환하게 웃고 있다.

울컥한다. 


지난 토요일 잠깐 마트 장 보고 나오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훈련소에 간 아이에게 온 첫 전화.

그걸 못 받은 엄마 아빠라니!

하필 그 시간에 장을 보러 간 내가 너무도 원망스럽다.


이번에 알았다. 세상엔 두 종류의 엄마가 있다는 걸.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와 그렇지 않은 엄마.

후자였던 열흘 전까지만 해도 아들 전화 한 통에 이렇게 안달복달하게 될지 결단코 알지 못했다.


목소리는 못 들었지만 사진이라도 보니 안심이 된다.

매일 인터넷 편지를 쓰고, 기도를 한다.

몸과 마음 건강히 지내다 오는 것.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다.

땅의 군인 장병 우리 아들들 모두 그러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진 : 코로나 이후 첫 대면 입소식이라고 촬영을 해가더니 뉴스에 나옴.



매거진의 이전글 수능 100일 선물과 조르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