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까지 엄마 집밥을 먹고살았던 나는 기숙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이불부터 시작해 씻고 빨래하고 자잘하게 쓸 것까지 틈틈이 사다 날랐다. 기숙사 입소일 하루 전날, 한가득 짐을 싣고 먼 길을 나섰다.
아들은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집 떠나 살 걸 생각하면 좀 막막하다고 말했다. 떠나는 날이 가까워지자 설렘이 더 크다고 했다. 아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생활을 할 생각을 하면 내 맘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매끼 밥을 사 먹을 생각을 하면 안쓰러웠다. 집밥을 유난히 찾는 아이기에 더 그렇다. 집에 있는 재료를 더해 교묘하게 집밥화시켜도 '이거 엄마가 한 거 아니죠?' 하며 집어내는 아이기에 더 그렇다. 이런 아이에게 집밥을 많이 안 해준 것이 새삼 미안했다.
일어나는 시간이 식구마다 달라 하루에 몇 번이나 밥을 차리다가 열이 받혀 짜증 냈던 생각이 났다. 집안일 체질이 아니라 시켜 먹거나 사 오거나 간편식을 차린 적도 많았다. 아들이 먹은 마지막 집밥이 삼겹살에 알탕 밀키트였으니. 그래도 매일 한 끼는 먹던 집밥을 아예 못 먹는 것이 가장 마음 쓰였다.
기숙사엔 학생만 들어갈 수 있었다. 짐을 다 옮기고 근처에서 하루를 같이 보냈다. 다음 날 룸메이트들이 도착했을 즈음 기숙사 앞에서 헤어졌다. 아들이 걱정 말라며 꼭 안아주었다. 조곤조곤 말 잘 건네고 애교 있고 뭘 시키면 잘 도와주던 아이가 엄마 아빠를 긴 팔로 끌어안았다.
집 오는 길 내내 헛헛했다. 다행일지 헛헛함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명치 위로 올라오지는 않아 평온한 상태로 왔다.
집에 도착해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가는데, 맞은편에 있는 아들 방이 보였다.
빈 방.
체취가 배어있는 이불과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는 빈 방.
그제야 헛헛함이 명치 위로 올라왔다.
가슴에 저릿한 기운이 스쳐갔다.
한참을 서서 곳곳에 남겨두고 간 흔적을 눈에 담았다.
첫째를 군대에 보낼 때와는 또 다른 느낌.
방학 때마다 이 방에서 지내겠지만 먼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다 보면 이 방이 제 방처럼 느껴질까 싶다. 엄마 집에 잠깐 다니러 온 느낌 아닐까.
늦은 밤, 톡이 왔다.
그날 만난 룸메이트를 찍은 동영상이었다. 서글해 보이는 한 아이가 어머니, 라 부르며 운을 뗐다. 아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된 룸메인데 사이좋게 잘 지낼 테니 걱정 말라는 인사였다. 영상을 찍어 서로의 부모에게 보낸 거였다. 어찌나 기특하고 안심이 되던지... 금방 사귄 친구와 벌써 스스럼없이 지내는 걸 보니 걱정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아들이 내 품을 떠나 새로운 곳, 더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꿈을 펼치길 바란다.
바라는 마음과 상관없이 떼어 놓은 자리가 아린 건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내 품에 있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릴 적 사진을 펼쳐본다.
언제 이렇게 컸지?
밤이 되면 현관 쪽을 보며 생각한다.
'이 녀석 오늘도 늦네.'
까만 현관이 입을 다물고 있다.
아차...
아침 준비하다가 깜짝 놀란다.
'아, 빨리 깨워야 하는데.'
아들 방으로 미끄러지듯 달린다.
침대 이불이 납작하게 누워있다.
아차...
며칠 지났는데 한 번씩 이런다.
아리고 생소한 이 감정에서 쉬 벗어나고 싶지 않다.
한동안은 그저 잠잠히 잠겨있고 싶다.
충분히 젖어있고 싶다.
이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그린 노래가 있다.
가사를 받아 적어 본다.
너를 업고
- 브로콜리너마저
너를 업고 동네 길을 걷는다 너는 잠깐 잠이 들었나 하고 돌아보면 한 바퀴 도는 사이에 너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 달콤했던 꿈은 어디로 갔나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꿈나라를 건너가는 너 어떤 것도 너를 막지 못하지 나는 바람이 되어 너를 날려 보낼게
너를 업고 동네 길을 걷는다 나도 잠깐 잠이 들었나 나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 포근했던 등은 어디로 갔나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꿈나라를 건너가는 너 어떤 것도 너를 막지 못하지 나는 바람이 되어 너를 날려 보낼게
너를 업고 노래를 부른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기를 너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