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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Aug 18. 2021

비관 주간을 지내며

책을 읽다가 가름줄을 끼우고 책장을 덮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읽던 책은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잔뜩 인상을 쓰고 읽는 책이다. 읽었던 부분을 읽고 또 읽고 한다. 아직 앞부분이지만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엉뚱한 부분에 꽂힐 때가 있다. 이 책에서도 그랬다.

바로, 그 세상을 찾아 나선 사람이 있었다. 어느 시계 제작자의 손자로, 운은 없었지만 매력적이었던 오스트리아인. 비극적이고 로맨틱한 이미지로 알려진 루트비히 볼츠만이다.

과학자를 소개하는 부분으로 그저 간단히 설명하는, 중요하지 않은 문장이었다. 여기서 '운은 없었지만 매력적이었던'에서 혼자 큭큭 거리며 웃었다.

왜 이리 친근하지? 이 남 일 같지 않은 수식어는 뭐지?

한 인물의 생을 돌아보았을 때 매력적이라는 건 대단히 멋진 찬사다. 하지만 운이 없었다니. 얼마나 운이 없었으면 두 문장의 인물 소개에서 1/4을 차지한단 말인가.


글을 쓴다는 건 온전히 쉬지 못한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도 글감을 찾는 레이더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그렇게 된다. 개중에는 놓치는 게 대부분이지만 강렬한 울림을 주는 것은 남기 마련이다. 놓치기 싫을 만큼 아까운 건 메모를 하든 사진을 찍든 녹음을 하든 남겨두게 된다.  


온전히 쉬지 못하는 대표직은 주부다. 땡, 퇴근이다! 지금부터 자유시간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출퇴근이 명확하지 않게 된 건 주부의 삶을 시작하고나서부터다. 뭐든 맺음을 하며 딱 끝나는 게 없다. 밥을 해 먹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식사시간, 돌봄시간이 따로 정해진 게 아니다. 아무 때라도 가족 중 어느 하나가 배 고프다면 먹을 걸 차려 주고 늦게 오면 기다리며 탈 없이 원활히 잘 돌아가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각자가 완전히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을 때까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가족들에게 들이는 시간과 공이 아까운 게 아니라 생활에 딱히 출퇴근이 없다는 거다.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문득 이 지점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니 글을 쓰는데, 어? 하필 주부네?

이런 경우라면 더 말할 게 있을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출퇴근이 없다는 건 몰입할 기회가 적다는 이다. 언제라도 현실로 빠르게 소환되어야 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푹 빠져 몰두하기가 어렵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 속에, 자연 속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 완전히 젖어 들어 흠뻑 심취해보고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 텐데 그 심취 조차 쉽지 않으니 건져 낼 건덕지가 있을까 싶은 거다.


긍정의 기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뭐든 생각하는 만큼 된다!
내가 하고자 한다면 온 우주의 기운이 그것을 이루어주기 위해 움직인다!


이런 찬란한 말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만, 투정, 비관, 불안이 비집고 나올 때가 있다. 지금 내가 그런 때다.

트집거리가 사방에 널렸다. 글을 읽을 때 조차도 트집거리 투성이다. 조회수 운운하는 글이나 자극적 제목이 달린 글은 저절로 스킵하게 되고, 가르치려는 글이나 일반적인 사실을 늘어놓는 글도 패스하게 된다. 지나치게 생기발랄하거나 자아도취된 글, 비판하거나 투덜대는 글도 불편하다. 싫으면 안 읽으면 될 걸 굳이 이런 글까지 써야 하나 생각하며 읽는다.

그중에 제일 웃긴 건 이렇게 나열하며 투덜거리는 나 자신이다. 누가 누굴 비판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번 주는 비관 주간이 확실하다.      


어제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각자 아이들 걱정을 하던 차에 '지금 우리 애들이 이래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지레 안될 거다 생각하면 안 돼. 엄마가 아이를 믿어야지. 믿는 대로 되는 거라고!'라고 말하며 모두가 퐈이팅을 외쳤다. 한창 비관 주간을 살고 있는 내가 한마디 했다.

'솔직히 맘 속으로는 '정말 될까?' 하는 일말의 의심이 있잖아. 안 그래?'

이렇게 초를 치니 다들 피식 웃었다. 공감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는 싫은 웃음이었다.


운은 없었지만 매력적이었던


운이 없었던 과학자에 눈길이 갔던 이유가 동질감을 느껴서라고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다. 극렬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비관 주간이기에 눈에 들어온 걸 거다.

출퇴근 시간도 없이 글을 찾고 고민하며 사는데 운까지 없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눈을 살짝 옆으로 옮긴다. '매력적이었던'이 빛을 내며 기다리고 있다.

앞부분은 삭제하고 뒷부분을 강조해야겠다. 내 글은 아니지만 무릇 글이란 퇴고가 가장 중요하니까.

'운은 없었지만  매력적이었던' 


마음 한 편에 어떤 불안과 비관이 비집고 나올 틈을 엿보고 있더라도 '매력적인'으로 눌러버려야겠다.

투덜이와 비관이를 이만 토닥토닥 잠재워야겠다. 오냐오냐해 줬더니 너무 설친다.

아, 언제까지 마음을 다잡으며 살아야 할까. 마음 좀 다잡지 않고 편하게 살고프다.

나는 평생 수행해야 할 인간인가 보다.

평. 정. 심....


(비판글의 단골 메뉴인 일기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아무려면 어때. 일기에서 출발하지 않는 글이 있는가. 일기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글의 시작 아니겠는가.)


빗방울 안에 하늘 있다~  photo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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