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요일,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번 주 밤하늘에 장관이 펼쳐진다. 6일(월)에는 일몰 후 1시간이면 목성, 토성, 금성, 달이 서녘 하늘에 일렬로 늘어선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내일(7일)은 달과 금성이 4.8도까지 접근하고, 8일(수)에는 금성의 고도가 가장 높아지며 -4.7등급으로 최고 밝기에 이른다.
출처: Skysafari app 금성은 서쪽 하늘에서 달을 제외한 주변의 어떤 별보다 밝게 빛나는 천체인 만큼 한눈에 찾을 수 있다. 일 년 중 금성을 관측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하겠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발표에 따르면, 12월 7일과 12월 11일 사이에 초승달이 금성, 토성, 목성 등 하늘에 있는 일련의 행성을 차례로 접근하면서 추적할 수도 있다.} [출처: 서울신문 2021. 12. 6일 자]
기사를 보고 바로 날짜와 날씨를 확인했어요. 살아보니 저라는 사람은 이런 걸 너무 보고 싶어 하는 부류의 사람이더군요.
때는 어제, 모든 조건이 완벽했습니다. 가족들도 다 늦게 들어오고, 날씨도 쾌청했거든요. 천문 현상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철두철미하진 못해서, 대충 해가 5시 30분쯤에 진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경우, 알람을 맞춰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확률이 매우 높지요.
마침 출타했다(커피 한잔 사러) 집 앞 지상에 주차하던 타이밍이었고,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불그죽죽하게 저물고 있었어요. 그 하늘에 마침 달이 똭 떠 있는 겁니다. 아! 맞다! 그거! 그거 봐야지!! 한 손엔 커피, 또 한 손엔 폰을 들고 눈은 하늘에 꽂은 채 앞으로 앞으로 달리는 이 구역 미친ㄴ~
현장감과 박진감을 위해 지금부터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해 보겠습니다.
달 오른쪽에 매우 밝은 별 발견! 저건 필시 금성일 것이다.
계속 앞으로 앞으로...
달 왼쪽 한참 위에 또 다른 별 발견! 저건 목성? 우와아!!
토성은 안 보이네?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지나가던 차가 헤드라이트를 비추는 바람에 잠시 멈춤. 다시 초점 맞추는데 갑자기 가로등 불 점등. 아 놔 증말!
달_금성 (2021. 12. 7) by duduni
안 되겠다. 어두운 데로 가야 되겠어. 두두두두 달려 차에 탑승. 신들린 드라이브로 어두컴컴할 줄 알았던 패밀리파크에 도착. 깜깜하니 가로등이 두 배는 밝아 보인다는 걸 몰랐음. 하지만 난 굴하지 않는다. 다다다다 달려 언덕배기로 올라감. 서쪽을 향하여 몸을 틀었는데 다, 달이 왜 안 보이지? 으~~!! 산이 가리고 있다! 산꼭대기에 달이 걸렸다! 하아... 할 수 없지. 신들리게 오던 와중에도 찜해뒀던 제3의 장소로 출발.
산꼭대기에 걸린 달_겨울이기에 가능한 사진일 듯. (2021. 12. 7) by duduni
기찻길을 가로지르는 육교 위로 가면 된다. 육교 위에선 가리는 게 없지. 음하하하.
개구리 주차. 육교 계단을 헉헉거리며 오름. 그러나 싸한 느낌. 육교 위가 왜 이리 밝지? 높은 육교는 길의 가로등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는 높이였다. 내 눈 바로 앞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가로등 불빛을 받으니 무대 위에서 스팟 받는 주인공 된 기분. 거기다 달과 금성은 전깃줄에 대롱대롱 걸려있네? 그대로 육교를 내려감. 차까지 달림. 기진맥진.
덩그러니 서 있는 차 앞에 와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급 현실 자각을 하며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데 차를 세운 그 자리에서 오히려 더 잘 보이는 건 뭐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힘이.... 없다. 금성이 가장 밝게 빛나는 건 내일(수요일)이라니까. 터덜터덜 귀가.
집에 오니 커피 이 지경. by duduni
그리고 오늘, 쌩쌩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주차를 했습니다. 어제 일은 깡그리 잊고 말이죠. 데자뷔처럼 하늘을 보고 아, 맞다!
오늘 깨달은 건 어제 최초로 주차를 했던 우리 아파트 지상 주차장 그 자리가 가장 명당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촴 나, 이건 무슨 파랑새도 아니고.
오늘은 아주 희미한 토성까지 다 찍혔습니다.
목성_달_토성_금성. 베스트 사진...아닌가? 약간 흔들렸나... (2021. 12. 8) by duduni
별에 대한 지식은 없고 열정만 있지만 하늘을 보고 별을 볼 때 두근거리는 설렘과 벅참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즐거움입니다. 원초적인, 순수한,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 무수한 상상력.
밤하늘의 매력이고 맛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2021. 12. 8) by duduni
사진을 찍자마자 단톡방이 띠리링 울리는 게 아니겠어요? 동화 모임 별별씨였지요. 톡에 갓 찍은 사진 한 장 올리며, 지금 바로 서쪽 하늘을 보시라고 권했지요. 글벗들은 팔공산, 부산에서 찍은 밤하늘 사진을 올려주었습니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본 밤하늘이 어찌나 뭉클한 느낌을 주던지요.
왼 : 팔공산의 밤 하늘 / 오른 : 부산의 밤 하늘 (2021. 12. 8) by 별별씨 글벗님 두 분
이 천문 현상이 드문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일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내일 밤하늘에서 목성, 토성, 달, 금성을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그 행성들을 발견하시면 이 글을 떠올리시려나... 즐거운 관찰+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