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는 브런치에 무슨 글을 올렸나 싶어 글 목록에 스크롤을 내려보았어요. 브런치를 시작한 지 한 달 남짓이었던 때라 2,3일에 한 편씩 글을 올렸네요. 연말에 대한 소회의 글은 없었어요. 작년엔 아이 입시로 연말이고 뭐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시간 여유는 없어요. 무슨 잘못을 했는지 늘 시간이 뒤에서 저를 쫓아오거든요. 시간이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보일 성싶으면 그제야 한숨 돌리며 철퍼덕 주저앉아 딴짓거리를 하지요. 그러다 언제 왔는지 바로 귀 뒤에서 기척이 감지되면 또 화들짝 놀라 냅다 달아나고요. 늘 이 추격전이 이어집니다.
어젯밤, 딴짓거리의 연장으로 유퀴즈를 보았어요. 천안의 산타 버스 기사님이 나오셨더군요. 19년째 12월이 되면 버스 안을 형형색색의 트리 장식과 인형, 전구들로 꾸미신대요. 버스를 탄 승객들은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듯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기사님은 DJ처럼 마이크를 달고 진행을 하세요. 결혼기념일을 맞은 승객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박수를 유도하지요. 신청곡도 틀어주고요. 매일 15시간 이상 운전으로 노곤하기 십상이기에 일부러 승객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도 건네고 퀴즈도 내신대요.
버스 곳곳에 산타 양말과 주머니를 비치해 성금도 모금해요. 19년간 그렇게 모인 성금이 2500만 원에 달한대요. 연말이면 쌀과 함께 어린이재단에 기부를 하고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보기 좋아서 입을 헤벌리고 보았어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스스로 주도하여 타인을 위한 이벤트를 만들어 이어나간다는 것이 참 근사했어요. 과정을 즐기는 모습도요. 그 표정이 얼마나 밝으신지. 자신의 삶을 진정 사랑하는 그분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어요.
저는 오래전부터 가끔씩 세계테마기행을 봐왔어요. 장수 프로그램이죠. 내가 가 보지 못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궁금했거든요.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면 몇 가구 안 사는 어느 오지마을이 나와요. 거기 사는 주민을 인터뷰하면 열에 열 모두 이렇게 말해요. "저는 이곳을 정말 사랑해요. 이곳은 제 고향이고 이 아름다운 곳에 사는 것이 정말 좋아요. 행복합니다."
그런 인터뷰를 보면 뎅~~ 징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산골짜기에서, 어디 옮기지도 않고 한 곳에 몇십 년을 살았는데 지겹지 않나? 인터뷰라고 포장한 거 아니야? 하지만 그의 밝은 표정 어디에도 거짓은 보이지 않았어요.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났어요. 복붙 같은 그런 인터뷰가 또 나와요. 이제는 원주민의 그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요. 그래, 바로 저거야.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꾸려가는, 그 삶에 만족하는 자세.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는 마음. 그게 인생이야.
산타버스 기사님도 오지의 원주민도 그토록 환한 얼굴인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그들은 삶을 살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분들인 거예요.
크리스마스가 되고 연말이 되었다 해도 아무 일도, 아무 이벤트도 없는 요즘이에요. 특별한 시즌에 나만 아무 일 없는 것 같아 허전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아무 일 없는 이 일상은 여전히 내 삶의 한 부분이에요. 시간이 어디 머물든 신경 쓰지 말고 나는 내 삶을 살아야겠지요. 꿋꿋하게 알차게 자신 있게 의미 있게 아름답게.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딴짓거리를 하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나의 삶을 사랑하면서요.
메리 크리스마스!
[눈 구경하기 힘든 곳에 삽니다. 작년 겨울 고대하던 덕유산 곤돌라를 타러 가는 길, 눈을 만나 황홀했던 순간을 담았습니다. 일 년 지나 이 하얀 눈꽃 세상을 돌려보는 50초가 행복하네요. 아름다운 딴짓의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