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두니 Feb 23. 2022

행운을 드립니다. 사양하지 마세요._ 구름추적자 1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비문증에 이어 섬광 현상까지 나타나는 건가 싶었다.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고 비벼보았다. 분명 무지갯빛이었다.


새소리를 좇아 수양버들 숲으로 들어갔다. 웅크린 잎을 아직은 내보낼 생각이 없는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소리는 꼭대기쯤에서 울려 퍼졌다.

뼉, 뼉, 뼉.

강단 있는 소리였다. 다가가면 다음 나무로 도망가고, 쫓아가면 달아나고. 잡기 놀이를 즐기는 녀석이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깃털에 배 부분이 빨갰다. 오색딱따구리였다. 조금 더 다가갈라치면 어김없이 발밑에서 나는 소리, 바사사삭. 그렇게 포르르 날아가버렸다. 마른풀 밟는 소리가 이렇게 클 줄이야.


오색딱따구리.  by duduni
나무에서 하늘로.   by duduni


나무 꼭대기에 머물던 시선이 배경이 되어주는 하늘로 옮겨졌다. 연한 하늘에 똑떨어지는 먹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구름 추적자로서 놓칠 수 없지. 버석버석...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양버들 숲을 벗어났다.

탁 트인 들판으로 나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그때 본 것이다.

은은한 무지갯빛을!

먹구름 옆, 곧 흐트러질 듯한 하얀 구름에 빨, 주, 노, 초가 어려있었다. 노을도 아니고 무지개도 아닌 저것이 뭐냔 말이다.


아무도 본 적 없다는 무지개가 시작되는 꿀단지 입을 목격한 것일까?

( 적 없을 수밖에. 무지개는 원래 동그라미 모양이라고 하니.)

흐릿한 오색에서 무지개가 곧 뻗어 나올 것만 같았다. 확인을 하고 싶었다. 내 눈에만 저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거다. 무지개 색을 띤 구름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으니 내가 제대로 보는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바로 아래에 햇살교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 구름 무지개 색 맞지요?'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왠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주춤주춤 뒷걸음질 칠 것 같았다.

그때 다리 난간에서 강물을 바라보는 한 아이가 보였다. 아이들이라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저.... 어린이, 뭐 좀 물어볼게요.'라고 말을 붙이려는 순간, 아이가 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청둥오리 형제를 찍고 있었다. 그것도 동영상으로. 자칫 귀한 영상에 소음이 삽입될 뻔했다. 한껏 집중하고 있는 아이를 방해할 수 없었다. 자연에 몰입하는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서.


결국 아무에게도 확인 못한 채 무지갯빛이 나는 구름에 눈을 꽂고서 그냥 걸었다. 나 같은 구름 추적자가 있으면 말을 붙여 보려 했지만 안보였다. 십 여분이 지나자 구름은 흩어져 하늘에 녹아들었다. 구름과 함께 무지개색도 사라졌다. 내 눈 속에 잔상으로 계속 남아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와 검색을 하고서야 그 정체를 알았다.


'무지개 구름' : 채운 彩雲, iridescent cloud.

태양광선의 회절 현상에 의한 것으로 구름입자의 크기, 분포상태 등에 따라 색채가 변한다. 채운은 아름답기 때문에 서운(瑞雲) ·경운(景雲) ·자운(紫雲)이라고도 하며, 큰 경사가 있을 징조라고 말해 왔다. _두산백과

권층운, 권적운, 고층운 등 높은 구름의 주변부나 전체가 불규칙한 모양으로 색을 띠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구름을 '무지개 빛 구름'이라 한다._지구과학사전



발생 조건이 극히 드물어 실제 무지개 구름이 떠오를 확률은 희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무지개 구름을 보면 큰 행운이 온다고 한다. 무지개 구름이라니! 행운이 온다니!

정체를 확인하고부터 행운의 기운이 머리 위에서 무지개 모양으로 드리워지는 기분이었다. 무지개 색이 맞는지 물어보려다 실패한 건 오직 내게만 행운이 오게 되어 있다는 징조인가? 무지개 구름의 실체와 의미를 안 이상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이 지점에서 통 큰 결정을 내리노니.

이 좋은 걸 나 혼자 누리는 것보다 함께 누리면 좋을 것 같아 공개하기로 한다. 이 배포를 어쩔 것이야! 무지개 구름 사진을 보고 '애걔?'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행운은 보는 만큼 다가오는 것. 마음의 눈을 활짝 열고 바라보시라. 


구독자님들, 이웃 작가님들, 행운 가득 받으세요.

좋은 일 생기면 다 제 덕인 줄만 아소서.



**실제로는 분명 무지개색이었으나, 폰 카메라가 원래의 색채를 잡아내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가운데 부분. 산 위 소나무 바로 위쪽.  photo by duduni


이제 보니 강물에도 비쳤네요. photo by duduni


도대체 무지개가 어디 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한 가이드^^;;;  굿 럭!!   조악한 색칠&photo by duduni






이전 08화 미련 곰탱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