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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Mar 15. 2022

작은 것들이 주는 위로

애쓴다고 잘되는 건 아니다.

노력과 성과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기대에는 정도가 있다.

일말의 기대가 있는가 하면 절반이 넘는 기대도 있다.

기대는 가능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90%의 기대가 있었다.

무참히 꺾였다.  

품고 있던 90은 희망고문이었다.

높이 올라갔다 떨어지니 더 아팠다.


좋은 경험이었단 말은 개소리다.

1도 안 좋다.

머리를 부여잡고 앉아있었다.

그대로 눕고 싶었다.

그러나 눕지 않았다.


낙담과 자괴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고 싶지 않았다.

마이 해 봤다 아이가.

당장 힘없이 널브러져 있더라도

결국은 몸을 일으켜야 하는 걸 아니까.


터벅터벅 걸었다.

수시로 내뿜는 한숨이 걸음을 늦추었다.

가벼운 옷차림들이 옆을 지나갔다.

나만 추운 가 보다.


유난히 탁한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동동 떠다니는 까만 물닭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흐린 물속 여기저기서 물고기 옆 몸통이 반짝거린다.

잡아먹힐 것도 모르고 천진하게 헤엄치고 있다.


들판 안쪽 산벚나무에 봉오리가 돋았나 건너다보았다.

가지 끝은 그저 뿌옇게 보일 뿐이다.

촉촉해진 들판은 얼기설기 푸릇했다.

봄이라더니 그런가 보네.


문득 꽃 향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 멀리 한 그루 매화나무가 뽀얗게 서 있다.

예까지 향을 보내주니 고맙다만 거기까지 갈 힘이 없네.

몸은 걷고 있지만 마음은 늘어져 자고 있다.


뼈롱 뼈롱.

청아한 새소리가 잠을 깨운다.

무심히 지나치기엔 지나치게 영롱하다.

탈칵.

그제야 눈에 생기가 켜졌다.


새소리를 따라 밧줄 울타리를 넘어 들판 안으로 살금살금.

쀼-릿  쀼-릿. 짝을 찾는 박새 소리.

삘릴리리리. 어느 할미새 소리.

치르르르. 이방인을 경계하는 소리.

숨어있던 얼룩 들고양이도 살금살금.

그때,

까악 까악. 심상치 않은 까마귀 떼 소리.

까치 한 마리 : 까마귀 네댓 마리의 패싸움.

피 터지는 삶의 현장.


한참을 서서 새소리를 들었다.

한숨이 한결 더디 나왔다.

좋네.

돌아서 들판을 거슬러 나가려 한 발을 들었다.


순간 푸릇푸릇하던 잎이 눈앞에 확 다가왔다.

뭉뚱그려 보았던 풀밭이 들풀 하나하나로 보이는 것이다.

발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애써 흙을 비집고 올라온 자디잔 새싹들을 밟을 수 없었다.

두 발을 모으고 살며시 웅크려 앉았다.


세상에!

별꽃이었다.

순백의 별꽃이 또렷하게 피어있었다.

봄까치꽃, 냉이꽃, 광대나물 꽃도 송송 돋아나 있었다.


언뜻 볼 때는 몰랐다. 그저 말뿐인 푸릇하네, 봄이네,였다.

자세히 보고야 알았다.

꽃이 피었다는 걸.

정말 예쁘다는 걸.

기특하단 걸.

반했다는 걸.

기쁨이 스며든다는 걸.

짊어진 겨울을 벗고 싶다는 걸.

진짜 봄이 왔다는 걸.


쥐가 나도록 쪼그리고 있어도 좋았다.

이 봄꽃이 피어나 처음 눈 맞춤 한 이가 나일지도 모를 일.

웃음이 났다.

등이 펴졌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벌떡 일어나 다시 길을 걸었다.

뽀얀 매화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럴 힘이 돋아났다.


푸른 들판은 숨은 꽃들로 환했다.

새소리가 한층 명료하게 울렸다.

물닭들이 힘차게 날갯짓했다.

은빛 물고기들이 보란 듯이 펄떡였다.

겉옷을 벗었다.


참 봄이 왔다.


별꽃 / 봄까치꽃(큰개불알풀꽃) / 냉이꽃 / 광대나물  photo by duduni


매화  photo by duduni


박새, 할미새종류, 까치  등 온갖 새소리(음향 올려서 들어보세요)       by duduni
까치 : 까마귀 떼의 패싸움(정신 시끄러움 주의)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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