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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May 23. 2022

때죽나무 꽃 샹들리에

풀, 꽃, 새를 찍으면 이름을 조사해서 SNS에 올린다. 이름을 기억하고 기록해두기 위해서다. 나만의 풀꽃이름 사전인 셈이다. 알고리즘에 따라 올라오는 꽃 사진을 보며 이름을 익히기도 한다.


며칠 전 스크롤을 올리다 하이얗게 핀 샤스타데이지 꽃 무더기 사진을 보고 일순 멈추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다음 날 아침 차를 달려 진밭골로 갔다.


주차장에서 작은 못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에서부터 하얀 꽃물결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급 작전에 투입된 요원마냥 끼이익! 급 주차를 하고는 꽃과 눈 맞춤을 하며 다가갔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Mai piu cosi Lontano 가 흘러나오는 딱 그 분위기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IABzDMZz0RE

안드레아 보첼리의 Mai piu cosi Lontano


한들한들 흔들리며 방긋방긋 웃고 있는 샤스타데이지를 보며 꽃 감상 전용 공식 어록이 되어버린 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너희는 어쩜 이렇게 예쁘니?"


못 둘레 비스듬한 경사면에 데이지가 데이지가! 한참을 들여다보고 옆에 앉아도 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못 가장자리엔 노란 붓꽃이, 못 둘레 산 울타리엔 빨간 장미와 하얀 찔레꽃이 향을 뿜어대고 있었다. 진밭골 근처에 사는 친구가 이 산책길을 무릉도원이라 칭하더니 그 말이 맞았다.

샤스타데이지  photo by duduni


화룡점정으로 쪼로로롱 꾀꼬리 소리가 들렸다. 보다 선명한 새소리를 담고자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걸었다. 막 촬영 버튼을 누르는데, 왜앵!!! 고요한 평화를 깨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망할 제초기. 다들 도대체 왜 이렇게 바지런한 거야? 제초기 소리는 모든 소리를 삼켜먹었다. 꿋꿋하게 버티던 새소리는 못을 가로질러 용지산으로 달아났다.


산에 난 둘레길을 보니 지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산 쪽에서 뇌 곳곳을 자극하는 다양한 새소리가 들렸다. 치솟아 오른 스트레스를 산새 소리로 눌러앉혀야겠다. 산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한 5분만 들어가도 제초기 소리 정도는 가뿐히 차단됐다.


왠갖 새들이 지저귀는 산 안에 들어서자 내 몸에 다시금 초록 피가 도는 것 같았다. 그때 밝은 빛이 눈에 띄었다. 어룽어룽한 나뭇잎 그림자 사이로 샛별 같이 빛나는 무언가가 보인 거다. 다가가 보니 대롱대롱 매달린 때죽나무 꽃이었다. 햇살을 머금어 샹들리에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흐흐흐흐.

웃음이 났다.

때죽나무 꽃 샹들리에 아래에서 새소리 실외(外) 연주를 감상하는 그 순간,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거저 받기만 해서 염치없지만 제 안에서 즐거워하는 한 인간을 바라보는 자연도 사뭇 흐뭇한 심정이지 않을까. 선물은 주는 이가 더 행복한 법이니.

되지빠귀와 여러 새 소리   by duduni
때죽나무 샹들리에  photo by duduni


마냥 들이대고 사정없이 찍어 댔더니 폰 배터리가 10%가 되었다. 내려가는 길에 주차장 입구에서 봤던 오동나무 꽃을 마지막으로 찍으려 마음먹고 있었기에 조마조마했다. 키 큰 오동나무에는 종모양 보라꽃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 컷 찍고 배터리는 방전되었다. 속도 제한을 감지하기 위해 켜 두는 티맵 대신 교통 안내 표지판과 도로 바닥의 속도 표시를 보며 돌아와야 했다.


그림자처럼 끼고 다니는 폰이 안 켜진다는 사실에 불안한 걸 보니 현대인이 맞나 보다. 아침 11시, 내가 쓴 건 오직 시간과 배터리. 남김없이 할애한 대상이 자연이라 생각하니 아까울 게 없다. 공짜 내게 주어진 걸 쓰고서 넘치도록 받았다 .  시간 반 동안 대가를 따지지 않고 껏 내어준, 그렇게 온전히 나를 채워준 자연에 감사하다.

오동나무 꽃  photo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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