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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Nov 18. 2021

붉은색이 땡긴다는 건

색에 예민한 편이다. 색은 미묘한 차이로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물건을 고를 때, 특히 옷을 살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도 색이다. 디자인도 재질도 가격도 아닌 색. 자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아름다움 중 눈길을 끄는 요소는 단연 색이다. 색에 먼저 끌려야 시선을 준다. 그런 다음 다른 요소를 살피게 된다.


색에 예민하다고 해서 색을 잘 쓰느냐? 절대 아니다. 색을 조화롭게 잘 쓰는 건 내게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색에 호불호가 있기 때문에 색 조합에 더 취약하다. 색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으니 조화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특히 그림 그릴 때가 어렵다. 고유의 '색감'을 찾고 싶다.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로 파랑이라 답한다. '주로'라고 하는 건 좋아하는 색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파랑 하면 침착, 우울, 신비로움, 차가움이 떠오른다.

때때로 보라, 초록, 하얀, 노랑을 좋아하기도 한다. 여러 색을 좋아하지만 거기에 붉은색이 포함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 붉은색이 끌린다.


포착한 일상 속 장면마다 붉은색이 있다.


by duduni

일찌감치 겨울로 접어든 산길을 드라이브할 때 만난 단풍이다. 온 힘을 다해 초록에서 빨강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경탄하며 바라본다. 신비로운 그라데이션 끝에는 숨 막힐 듯한 붉은 단풍이 마지막 생명력을 불태우고 있다.    



by duduni

생을 다한 나뭇잎을 버석버석 밟으며 걷는다. 갈색 융단 위로 지는 해가 드리워지고 갓 떨어진 붉은 잎이 햇빛 아래에서 빛나고 있다.



by duduni

철 모르고 피어 난 겨울 장미가 애처롭다. 가시를 바짝 세우고 담대하게 피었지만 잠깐 스치는 바람에도 오소소 떨고 있다. 너무 붉어 카메라 렌즈도 제대로 잡아내질 못한다.



by duduni

산책길 옆에 벽화마을이 있다기에 찾아가 본다. 낡은 담장에 색과 모양을 입히니 세월과 그림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담장의 형태와 집의 특색을 살려 위트 있게 그려진 그림들이 재미있다. 새빨간 담과 그 앞에 무심히 서 있는 식물의 대조적인 색 조합에 마음이 간다.  



by duduni

온 자연이 색을 잃어가는데, 유독 파릇파릇하던 잔디를 보며 의아해했었다. 방금 자라난 듯 어찌나 새파란지. 쓸리고 밟히는 데 이골이 나서 일까? 꼿꼿하게 본연의 색을 지니고 있다 한 순간에 색이 바뀐다. 서서히, 은은하게.... 그런 거 없다. 파랗다가 바로 붉어진다. 여간 창창한 게 아니다. 혼자 산보 나오신 할머니가 배경처럼 짱짱하게 걸어가신다.



by duduni

시장에 갔다 당근을 보고 반해 한 움큼 사 온다. 이파리가 달린 당근은 처음 본다. 쪽파, 조선 배추, 무도 같이 샀는데 어쩐지 가볍더라니. 무가 없다. '잎이 달린 당근 처음 봐요. 너무 예뻐요.- 이걸 처음 본다고요?'  '조선 배추가 뭐예요? - 이상하네, 젊은 사람들도 조선 배추 다 알던데...' 이런 대화 나누느라 주인장이 까먹었나 보다. 천 원 잃었다. 예쁘고 붉은 당근에 홀려서 돈을 놓쳤다.

당근을 씻은 다음 껍질째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주황색 기운이 손 발끝 모세혈관 구석구석 퍼진다.


붉은색이 끌리는 건 붉은색이 고프기 때문이다. 내게 에너지, 열정, 기운, 생명력, 뜨거움이 필요한 거다. 붉은색이 땡기는 계절 아닌가. 그래서 포인세티아도, 산타 클로스의 착장도, 난롯불도, 빨간 목도리도, 루돌프 사슴 코도 붉은 것일 지도.

혹여 당신, 이 즈음 붉은색이 부쩍 땡기신다면, 이 계절 타며 잘 살고 있다는 뜻임을 알아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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