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저자: 김성우, 엄기호
독서모임 '네 번 만나(말 그대로 네 번 만나며 책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다.)'를 통해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라는 책을 매주 1~2 챕터씩을 읽고, 온라인에서 소통을 하는 경험이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보다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같은 책을 읽고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네 번의 독서 모임 후 엄기호 작가님과 함께하는 북콘서트에 참석했다. 작년에 김성우 작가의 북콘서트에 참여하고 만족도가 높아서 이번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끌리듯 북콘서트 장소인 경기상상캠퍼스로 향했다. 토요일 오전에 가족과 휴식을 뒤로하고 이런 장소에 가는 내가 가끔 정상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뭔가에 이끌리듯 어느덧 강연을 듣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나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기호 작가님은 청중과 소통하며 강의하시는 분이라는 느낌이 왔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리액션에 함께 호흡하면서 강의 내용이 가감되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호흡했던 최고의 시절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학생 때 맨 앞쪽 자리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며 함께 호흡했던 수업이 지금 생각해 보면 행복했던 추억이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정치경제 선생님(손장평 선생님)의 지성미 넘치는 수업이 매우 환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재수할 때 일타 강사들은 모두가 환상적인 수업을 해서 수업 듣는 날이 뮤지컬 공연처럼 매일매일 기다려졌다. 심지어 식중독에 걸려서 먹은 것을 다 토했던 날도 버스를 타고 강남역 학원으로 스스로 이동하여 일타강사와 아이컨택하기 좋은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라이브를 참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현강에서 엄기호 작가님께 기운을 받고 몇 개월간 미뤄 뒀던 브런치 글쓰기도 다시 하게 되니 말이다.
교수님 강의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이 강의 시작을 파워포인트로 하지 않으신 것이다. 아마 강의를 하시면서도 강연장 내에서 청중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무대를 설계하며 강의하고 싶으신 듯 했다. 수업 장소에서의 흐름에 맞게 강의를 진행하며 청중과 호흡하기 위한 방법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프로젝트 화면이 비스듬하게 놓인 강연장(시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다.)을 더 선호한다고 말씀하셨다. 주차문제로 강의장소에 조금 늦으시면서 주차 초서 직원의 충실한 업무 수행(사전에 고지를 받지 않아서 주차가 불가능하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강의 내내 리터러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긴 고리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시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셨다. 건강 보험료를 내면서 병원도 안 가는데 아깝다고 투덜거리지 않고, 현재의 건강한 내가 아니라도 미래의 아픈 나, 또는 내 자손이 내가 낸 건강보험료 혜택을 볼 수도 있고, 또는 내가 아닌 다른 아픈 사람들의 병원비를 지불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긴 연결고리를 생각한다면 한결 당연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건강보험료를 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셨다. 세금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계속 잘 벌게 되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에 대해, 미래의 내 손주나 갑자기 장애가 발생한 일 할 수 없는 내 친구가 세금을 통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시스템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긴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당장의 즐거움을 미루고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 노력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 특히 쇼츠, 릴스 등을 즐겨보며 긴 글을 읽어내는 힘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것에 걱정을 하시며 심지어 저자 자신도 어제 유튜브 쇼츠를 3시간이나 보셨다며 현대인이 쇼츠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셨다. 이렇게 짧은 쇼츠를 많이 보거나 미디어에 장시간 노출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긴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 걱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학교는 지루함을 참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 되어야 하고 긴 글을 읽고 자신만의 글을 쓰면서 성찰하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주체를 길러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성찰하고 기획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지금 당장의 즐거움을 미루는 것(유예)을 견디게 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고 교실의 아이들이 기승전결 서사가 있는 긴 고리를 읽어내는 힘을 길러 내려면 우리가 수업에서 학생들과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물음표를 던져 주셨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긴 글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가지려면 전교과 선생님이 책 한 권을 함께 읽으며 책을 깊이 있게 읽고, 경험하며 이해하는 성취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것을 가장 교육현장에 잘 적용하신 분의 이야기가 담긴 책인 하시모토 다케시의 <슬로리딩>이 떠올랐다. 한 책을 읽고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미술, 음악, 체육 등의 교과 선생님이 읽은 책을 이용해 할 수 있는 활동을 협의해서 기획한 후 아이들이 책을 흠뻑 이해하도록 경험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독서를 좋아하게 만드는 매우 특별한 수업이다. 하지만 이 수업은 기획부터 활동까지 많은 선생님들의 협력이 필요한 수업이라 초등학교에서는 적용사례가 있지만, 중학교 적용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이 부분이 내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작가님은 강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시며 말씀하셨다. 특히 복잡하고 긴 서사가 담겨있는 소설 또는 인문학 서적을 추천하셨다. 예를 들어 '토지'같은 책 말이다. 그러면서 사실 본인도 다른 책은 다 읽어도 '토지'만큼은 읽기가 어려우셨다고 고백하시기도 했다. 공부 좀 했다는 교수님 자신도 읽기 어려운 책이니, 그냥 이런 책을 읽으란 건 이론일 뿐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교육활동에도 많이 활용하는데, 아이들의 지시에 따라 AI가 과정을 행하고, 결과물만 향유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시고 경계하셨다. 이렇게 된다면 AI가 주인공(실행함)이 되고 인간은 주인(지시를 내림)이 되어서 결국 아이들은 과정을 즐기는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이 AI 활용 후 꼭 개인 면담이나 발표를 통해 진정으로 자기 것으로 흡수하며 체화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신다고 했다. 이것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 순간의 즐거움을 잠시 미루고 나만의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서 스스로 기획한 방향대로 자신의 삶을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긴 고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이들은 긴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 길고 복잡한 서사를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1912년 교토 출생. 1934년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해 구 학제 나다중학교의 국어 교사로 부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카 간스케가 쓴 《은수저》를 중학교 과정 3년 동안 읽게 하는 전대미문의 수업을 실천하기 시작하여, 후기 학교에 지나지 않았던 나다학교를 일본 최고의 명문고로 이끈 주인공. 1962년에는 <은수저> 2기생들이 나다학교 최초로 교토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를, 1968년에는 사립고 최초로 도쿄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를 기록했다. 71세가 되던 해까지 50년에 걸쳐 나다의 교단에 섰으며, 1984년 정년퇴직한 후부터 2012년 현재까지 문필 활동 및 문화센터 강사로 활약하다가 2013년 별세했다.
하시모토 다케시로부터 은수저 교육을 받은 제자로는 작가 엔도 슈사쿠, 가나가와 현지사 구로이와 유지, 도쿄대학 총장, 도쿄대학 부학장, 일본 고등재판소 사무총장, 일본변호사연합회 사무총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