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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Dec 02. 2019

너를 달래줄 짜장 떡볶이

일요일 오전 10시 40분, 우리 남편은 조금 화가 난 채로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버렸고 아이는 서럽게 울며 바닥에서 자던 내 어깨를 흔들고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잠 많은 나 대신 먼저 강제 기상한 남편은 고양이 영상을 보고 싶어 한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영상 속 광고에 화가 난 건지 난데없이 제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고, 화난 아빠가 보던걸 꺼버리고 안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자 바로 열고 엄마한테 다~이를 거라면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던 거다.


"왜 아빠한테 소리 질렀어?"
"아빠가 테레비를 껐어."
"엄마가 다 들었는데 윤이가 영상 마음에 안 든다고 아빠한테 소리 지르던데."
"..."
"아빠한테 소리 지르면 안 돼. 알겠지?"
"네에.."


그토록 좋아하는 고양이 동영상(요즘 한창 빠져있는 유튜브)을 다 못 보고 풀이 죽은 아이를 보니 그냥 다시 틀어줄까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은 잘못이니 다시 보여주면 습관으로 굳혀질까 봐 마음을 고쳐먹었다. 꼭 끌어안고 배안 고프냐고 물었더니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아빠가 아침에 아무것도 안 주셨어?"

"시리얼 먹었어요"

"누룽지라도 끓여달라고 하지..."(남편 들으라는 듯이)

벌써 남편은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하긴 내가 아침잠이 많아서 365일 중 340일은 아침에 자는 모습밖에 못 본다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이제 여보 차례야... '  방문을 닫았다.

날씨도 춥고 흐리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서 따뜻한 국을 끓여줄까? 누룽지를 끓여줄까? 잠시 고민하다

10번 중 7~8번은 항상 잘 먹었던 짜장 떡볶이를 해주기로 했다. 

요리에 별 취미도 없고 손맛이 좋지도 않은 나도 쉽게 할 수 있는 메뉴다.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이


1. 떡을 불린다.(나는 밀떡을 썼다.)

2. 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올리고 짜장 가루를 풀어준다.

3. 양파와 호박을 잘게 다진다.(야채를 싫어해서 눈에 잘 안 보이게 잘게 다졌다.)

4. 어묵도 가늘게 썰고 야채와 함께 냄비에 넣는다,

5. 떡도 넣고 팔팔 끓인다.


십 분 만에 뚝딱 하고 만들어 식판에 주먹밥과 담아줬더니 포크로 열심히 찍어 먹는다. 맛있냐고 물어보니 맛있다며 씩 웃는 모습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다. 우리 딸 기분 풀고 달래주는 의미로 좋아하는 짜장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되려 내가 기분이 좋다.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저녁엔 남편과 친정에서 얻어 온 깻잎지를 먹으며 "우리 엄마들은 진짜 대단해. 이렇게 손 많이 가는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 난 윤이가 먹고 싶다고 해도 손 많이 가서 그냥 사 먹자 할 것 같아." 남편은 그래도 딸이 먹고 싶다면 너도 하게 될걸. 하는데 맞다. 잘 먹는 그 모습 하나를 상상하면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많이 가도 좋으니 작고 마른 우리 아이가 잘 먹는 음식이 하나둘씩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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