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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Dec 03. 2019

원래 잘 안 낫습니다.

주부습진

재작년 여름부터 갑자기 생긴 주부습진은 도통 나을 기미가 없다. 처음엔 손가락의 껍질이 벗겨지더니 물 닿을 때마다 쓰라리고 '이러다 지문 닳는 거 아냐?' 생각이 들 정도로 계속 까지고 까졌다. 아픔은 둘째치고 일단 외관상 매일 빨개져 있고 특히 겨울엔 손가락이 더 쭈글쭈글해 보여서 참 속상하다. 그래도 나름 손 예쁘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이젠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손을 보고 있자니 마냥 기분이 가라앉는다.

연고를 발라도 낫질 않을 땐 병원에 간다. 가서 주사도 맞고 호르몬제, 알레르기약, 위장약 등으로  빵빵해진 약봉투를 받는다. 약이 독하니 꼭 밥을 먹은 후 먹으라는 약사 할머니의 당부와 함께.

남편은 대학병원을 가보라는데 이것 때문에 대학병원까지 가는 건 왠지 오버 같아서 "에이 뭐 이런 걸로 큰 병원을 가." 손사래를 쳤다.

인터넷을 보니 주부습진은 원래도 쉽게 낫지 않고 나아도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한다.

병원 가서도 물어봤더니 '원래 낫기 힘들다. 관리를 잘해줘야 한다'라고 한다. 최대한 물 닿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과.


원래 낫기 힘들다 하지만 참 고약하고 끈질긴 질환이 아닐 수 없다. 약 먹고 낫고 다시 재발하고 또 약 먹고 낫고를 반복하니 나의 손가락은, 아니 나는 습진에 길들여졌다. 아프면 아픈 대로 참아보고 심해지면 병원으로, 잠잠하면 기뻐하고 말이다. (물론 상한 손을 보면 속상하지만)

이런 나를 엄마와 어머님은 예전 본인들이 습진을 앓아봐서 그 고통을 알기에 왜 이렇게 안 낫냐며 안타까워하신다. 특히 엄마는 나의 습진을 삼촌과 이모들에게도 말해서 어쩌다 얼굴 뵐 때면 너 손은 괜찮냐며 물어보시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끈질긴 습진은 처음에 내가 우려했던 '지문 닳는 거 아냐?'를 정말 현실로 만들어줬다.

작년 초 남편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는데, 공항에서 입국 심사할 적에(입국인지 출국인지) 지문을 찍고 통과하는데 계속 인식이 안되어 애먹었던 일, 그리고 아이 유치원 서류 때문에 급히 토요일에 등본을 떼러 주민센터를 갔는데 자동발급기에서 지문인식이 안돼 결국 남편이 떼온 일 사소하지만 그래도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것임은 틀림없다.

"여보 나 지문인식이 안되는데 주민등록증 다시 발급받을까? 발가락 지문은 멀쩡한데."

남편은 진짜 그렇게도 되는 거냐며 지문 찍을 일 있을 때 주섬주섬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기계에 대는 나를 상상하며 엄청 웃었다. "진짜 그렇게는 안 되겠지. 결혼하고 지문 닳았으니까 여보가 책임져." 라며 장난 섞인 엄포를 놨다.

그러다 결혼 전 다녔던 회사의 여자 과장님이 생각났다. 직원 출퇴근은 지문인식기로 관리했는데 퇴근시간 과장님과 내가 제일 먼저 나와 지문을 찍었다. 인식이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아(뒤에서 속으로 답답해한 적도 있었다.) 자기 먼저 찍으라며 양보하시곤 했는데, 왜 인식이 안될까 지문이 흐린가 보네 특이하다.라고 생각했고 나의 선명한 지문을 띠링 찍고서 신나게 퇴근했었다. 아마 과장님도 습진으로 지문이 닳지 않았을까. 지문이 안 찍히는 순간. 계속 오류가 나는 그 순간에 나는 과장님의 표정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다.

지금 내가 지문이 안 찍혀 당황하고 멋쩍은 상황의 표정과 같겠지.  내 뒤로 힘겹게 지문을 찍던 과장님의 그때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 손은 왜 빨개?" 심할 때는 아이가 이렇게 물어본다. "응. 엄마 습진이야. 그래서 손이 아야 해."

아프다니 호호 불어주는 따뜻한 입김으로 올해가 지나고 다가올 내년은 거짓말처럼 싹 나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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