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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Dec 05. 2019

같은 질문에 대처하는 자세

궁금한 게 많을 나이, 네 살

이제는 한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말이지 싶을 때가 많았는데 올해부터는 거짓말도 안 통하고 본인이 보고 들은 건 어지간하면 잊지 않고 꼭 기억해놓는다. 그 기억력이면 엄마의 대답은 다 기억해서 같은 질문은 안 할 것 같은데, 원래 이맘때는 그런 건지, 애들은 다 그런 건지 같은 걸 계속 묻는다. 이를테면


- 엄마 왜 다섯 살이어도 엄마 눈엔 아기야?

- 응. 엄마 아빠는 우리 윤이 아주 어린 갓난아기 때부터 봐왔잖아. 몸이 자라도 계속 아기로 보이지.

이 정도 얘기하면 아.. 하고 바로 수긍한다.

놀다가 문득 또 생각났는지 

- 엄마 왜 다섯 살인데 엄마 눈엔 아기야?

- 응. 엄마는 윤이 아기 때 모습을 기억하잖아. 그래서 계속 아기로 보여.

놀다가 또 한 번 묻는다.

- 엄마 왜 다섯 살 여섯 살 언니들도 엄마 눈엔 아기야?

- 응.. 엄마의 소중한 딸이잖아. 사십 살 오십 살이 돼도 엄마 아빠 눈엔 아기로 보여..

아이가 사십 살 오십 살을 알리 없지만 이렇게 답해준다.

요즘 이 질문을 하원하고 거짓말 안 보태고 열 번은 묻는다. 나중엔 귀찮아져서 대충 답해주거나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땐 안 들리는 척할 때도 종종 있다. 이것 말고도 


-  엄마 난 왜 키가 자라? 

- 엄마 고양이 이모는 왜 고양이들한테 아기라고 해?(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유튜브에서 고양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엄마, 아빠는 왜 엄마보다 키가 커?

- 엄마, 내 생일은 왜 지났어? 언제 와?


그나마 각각 다른 질문 할 때는 괜찮은데 같은걸 몇 번씩 계속 물어볼 땐 나중엔 답해주다 입과 멘털이 지쳐버린다. 그래 호기심 많은 게 좋지. 똑똑하다는 거겠지 이렇게 애써 위안 삼다 같은 걸 묻는 심리가 궁금해 찾아봤다. 

3~6세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특히 3~4세 아이들은 말을 끊임없이 하고 싶어 하며 부모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는 걸 좋아해서, 또는 언어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으로 혹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 딸은 그냥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몸으로 노는 것보다 앉아서 쫑알쫑알 상황극이나 역할극 하며 노는 걸 즐기는 아이라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쭉 읽던 중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을 때도 같은 질문을 반복할 수도 있어요."라는 뜨끔한 댓글을 발견했다.

엄마의 대답이 딸에겐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혹시라도 표정이 귀찮아 보였거나 말투가 무뚝뚝하지 않았나. 

솔직히 건성으로 대답해준 적도 많았던지라 더더욱 찔린다. 

질문에 적극적으로, 최대한 아이 눈높이에 맞춰 대답해 주라는 해결책 외에도  

아이들은 질문을 다양하게 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자꾸 다른 쪽으로 유도해 다양한 질문을 하게끔 도와주는 게 좋다는 글도 있었다. 그래 나도 이 방법을 써보자. 그런데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엄마인 나는 다양한 질문을 잘하는 사람일까. 고기도 구워본 사람이 잘 굽는 법인데 난 질문은커녕 손 한번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어제만 해도 어린이집 설명회서 질문 있냐는 말에 다른 엄마들은 저마다 손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내가 굳이 먼저 안 물어봐도 다들 물어보니까.. 듣기만 하면 되지.'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묻어가는 사람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아이의 다양한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선 나부터 다양하게 생각하고 용기 내 질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결론을 얻었다. 질문하려면 우선 용기가 필요하다.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을 스스럼없이 질문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는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와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으로 점점 커져서 다른 사람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것 아닐까. 나는 바쁜 엄마 아빠와 대화를 많이 했던 기억이 없다. 게다가 사근사근 말을 잘 들어주는 타입도 아니셨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부모님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부족해서 '질문'이라는 것에 더더욱 위축되고 소심해졌던 것 같다.

육아 고충이 있을 땐 꼭 이렇다. 뭔가 아이의 행동이나 말을 바꿔 보려 할 때의 시작점은 아이였지만 그 끝은 늘 나를 향하고 있었다.

법륜스님의 강연 중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를 바꾸려 하지 마세요. 엄마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아이도 바뀝니다." 아무리 육아 매뉴얼대로 흉내 내도 결국은 나의 내면부터 바뀌어야 자연스레 아이도 따라오게 되는, 이 단순한 진리를 여기서도 또 한 번 새긴다. 

매일 따뜻한 밥도 해먹여야 하고 오늘처럼 추운 날엔  떨지 않게 따뜻하게 옷도 입혀야 하고, 어린이집 가기 싫다 떼쓰는 마음도 따뜻이 보듬어줘야 하고, 나의 내면도 성장시켜야 하고, 이제 겨우 4년 차 엄마인 나는 오늘도 느낀다. 엄마의 길은 멀고도 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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