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풍뎅이 Dec 11. 2019

 내가 한의원에 가는 이유

네 살 정도 되면 손도 덜 가고 훨씬 편해져요.
아가씨 적부터 다녔던 한의원 간호사 언니가 그랬다.


결혼 전부터 목과 어깨 통증이 심했던 나는 자주 침을 맞으러 다녔다.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정형외과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라며 한의원을 다니는 나를 답답하게 생각했다.


늘 할아버지 할머니 손님들이 많아 예약을 해도 기본 이삼십 분은 기다렸지만 위치가 바로 집 앞인 데다 침도 잘 놔주고 무엇보다 다들 친절해서 단골이 되었다. 그러다 결혼하고 바로 오 개월 뒤 출산을 했고 남편 직장이 있는 타지로 가게 되어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딸아이 백일 무렵 부모님들 모시고 밥 한번 먹을 겸 주말에 시댁에 들렀다. (시댁과 내가 출산 전까지 살던 곳은 같은 지역이다.) 간 김에 한의원을 갔고 산후 보약도 짓고 침도 맞았다.

눈이 동그랗고 크던 간호사 언니는 산후보약은 빨리 먹어야 하는데 왜 이제 왔냐며 반겨줬고 진료 후 병원 앞 횡단보도에 서있던 내게 달려와 아기 돌보기 힘들지 않냐며 저런 말을 했다.


 “어휴 네 살 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되는 거지. 그런 날이 오긴 오나요?"

 “그래도 아기 키우면 시간 금방 가더라고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손에 한방파스가 가득 담긴 봉지를 쥐어주고 갔다.

몸과 마음이 지쳤던 때라 그 불룩한 봉지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모든 게 서투르던 시기, 외로움과 고달픔에 매일 울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는데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돼줬던 그 파스.


간호사 언니의 말처럼 시간은 정말 금방 갔다. 날로커가는 아이는 이제 언니가 말한 대로 손이 덜 가는 네 살이 되었고 20일 후엔 다섯 살이 된다.

아이가 큰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곳저곳의 통증이 랜덤으로 오고 있다. 목이 좀 괜찮아지면 어깨가 아프고 어쩔 땐 골반이 아프고,

이제는 집에서 십 분 거리의 한의원에 정착해 다니고 있다.


이곳에서 아침만 되면 땡땡 붓고 저리던 손가락 통증을 고쳤고 그 일로 내 마음속 허준이 된 원장 선생님에게 가끔 침을 맞으러 간다. 이런 나를 남편은 할머니스럽다며 역시 시골 출신(?)이라 한의원을 좋아한다고 결론 내렸다.


엄마가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도 지난가을 보약을 먹여볼 겸 데리고 가봤는데

큰 거부감 없이(물론 소아전문 한의원이라 애들이 좋아하게 꾸며놓긴 했다.) 침도 맞고 보약은 마치 간식처럼 잘 먹었다. 지금도 “한의원 가고 싶어. 보약 먹고 싶어.” 라며 종종 조르기도 한다.(우리 딸은 보약 때문에 한의원을 좋아하는 듯)

내가 한의원에 가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갈 때마다 느껴지는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 희미한 한약 냄새, 그리고 고마웠던 기억 이 정도다. 난 여전히 그냥 한의원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사랑하는 '국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