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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Dec 23. 2019

12월의 세 번째 편지

안녕 우리 딸.

우리 지나온 주에 뭐했지? 화요일엔 하원하고 그토록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카페 가서 엄마들은 커피 마시고 너희들은 젤리와 과자를 먹었잖아. 오랜만에 끝나고 같이 시간 보낸 거라 엄청 들뜬 둘 모습이 예뻐 보였어. 

주말에는 왕할머니 생신도 축하해드리고 어른들의 예쁨을 많이 받고 왔지.

특별한 건 없었지만 소소하게 즐거웠던 한주였어. 그렇지?


이 편지를 쓰다 문득 생각난 건데  항상 집에서 내복만 입고 있던 딸이 요즘 좀 변했어. 

집에서도 꼭 치마를 입고 있으려 하더라. 왜인지 꼭 바지는 벗고 양말은 신고 꼭 옛날에 엄마가 멋 부리느라 추운 겨울 맨다리에 교복 치마를 입었던 것처럼. 딸이 좋아하는 분홍색에 온통 반짝이로 뒤덮인 원피스나 치마가 옆으로 샤랄라 퍼지는 한복을 집에서 입고 있는 걸 보면 귀엽기도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좀 벗고 편한 거 입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자기 전에는 꼭 벗어야 된다 는 약속은 기가 막히게 잘 지켜줘서 고마워. 


모든 행동을 너의 마음대로 하고 싶지? 텔레비전도 마음껏 보고 싶고 장난감도 다 갖고 싶고 먹을 것도 혼자서만 먹고 싶고. 그래서 자꾸 엄마와 부딪히게 되지.

뭐든 너의 마음에 맞게 해주고 싶지만 그건 너를 위하는 길이 아니니 엄마 아빠는 적당한 선을 지키려고 해.

사실 어른이지만 그 적당한 선이 뭔지,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어. 특히 육아는 더 그런 것 같아. 정답이 없으니까. 

수많은 육아책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귀 얇은 엄마는 헷갈리기만 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더라.

그래서 요즘엔 육아책을 잘 안 보게 돼. 일부러 안 보려고 하는 것도 있어, 휘둘리지 않고 너와 엄마에게 맞는 답을 나름 찾으려 애쓰고 있거든.

우리는 사람이니까 기쁠 때, 슬플 때, 화날 때, 이유 없이 짜증 날 때 등등의 감정들이 엄청 많잖아. 너도 느끼는 감정이 되게 많을 텐데 네가 엄마한테 화내고 괜한 심통이라도 부리면 그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엄마도 같이 화를 낼 때가 많아. 아직 작은 '아이'라고만 생각해서 너의 감정을 인정 안 했던 거 같아. 너의 감정들도 당연하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여길게.(물론 잘못한 건 혼도 나야 하고)

그리고 모든 감정들이 지나간 직후엔 한번 꼭 안아줄게.

엄마가 말도 안 되게 못 참고 화를 내면 꼭 사과할게. 미안하다고. 

엄마가 돼보니 내 아이에게 사과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더라. "미안해"라는 말이 마치 내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인정하기는 아직도 여전히 어려워.)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 하고 넘어가면 너의 억울하거나 속상한 마음이 나중엔 눈덩이처럼 쌓이겠지? 그 큰 앙금을 나중에 마주하게 되면 엄마의 약한 멘탈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그러니깐 나중에 덜 아프기 위해 맞는 예방주사처럼 훗날 감정이 쌓여 아프지 않게 미리미리 잘 녹여보자.


오늘 산타 할아버지 오신다고 신나서 간 우리 딸. 

받고 싶었던 그 선물 정성껏 포장해서 선생님께 드렸어.

이따가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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