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작은 꼬마 이야기
요 근래 딸아이의 잠꼬대에 깨는 일이 많아졌다.
주로 새벽녘에, 짜증 섞인 비명처럼 내지르는데 처음에는 뭔가 불편해서 그러나 가습기 분사량도 늘려보고
덥나 싶어 전기매트 온도도 줄여보고 일으켜 물도 먹여보곤 했다. 하지만 잠꼬대는 계속 이어졌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내가 더 커. 너보다 훨씬 커 등의 키 얘기였다.
우리 딸은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으면 그렇게 잠꼬대를 한다. 주로 학기 초나 나에게 많이 혼났을 때 그러는데 최근들어선 키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다. 하원하고 오면 키에 대해 여러 번 묻는일이 많았다.
" 엄마 나는 왜 키가 작아?"
"친구들이 나보고 작대. 누구누구가 나보고 작다고 했어. 친구들 싫어." 라길래 친구들이 장난치는 거야. 키보다는 마음이 큰 사람이 더 멋진 거야 라고 매일 얘기해줬다.
집에 오면 괜히 심통 부리는 일도 잦고 잠꼬대도 계속되길래 오늘은 아이를 먼저 들여보내고 담임선생님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혹시 친구들이 키 작다고 놀리나요 여쭤보니
놀리는 친구는 없는데 요즘 반 아이들이 서로 등을 맞대고 키를 재본다고 하신다. 아이들끼리 키를 재다 그중 작은 누군가가 딸아이랑 재보면 되겠다 하며 가서 재보고 자신이 더 크다고 한단다. 요즘 아이들은 좀 빠른 것 같다면서 어머님 속상할까 봐 따로 말씀은 안 드렸었다며 괜히 죄송해하신다.
뭐 별수 있나요. 본인이 이겨내야 될 부분인데요.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에서 작은 키의 기준(?)이 된 아이의 마음이 아팠겠다 그제야 이해가 되면서 울적해졌다.
그래서 집에 와선 속상한 마음에 엄마한테 짜증을 부리고 밤에는 낮에 있었던 스트레스를 잠꼬대로 풀었구나. '그렇게 편식하고 간식만 찾으면서 키 클 생각을 하냐'며 마음속으로 아이에게 핀잔을 줬는데 정작 아이 마음도 몰라주냐며 핀잔받아야 할 사람은 나였다. 예민한 딸이 별일 아닌데 괜히 친구들 큰 것만 부러워해 키에 집착하는 줄 알았다.
나는 6살에 병설유치원에 들어갔는데(생일이 빨라 7살에 입학했다) 또래보다 마르고 키도 작아서 늘 별명이 땅꼬마 내지는 난쟁이였다. 언니라 부르라는 아이도 있었고 대놓고 키 작다고 놀리는 남자애들도 많았다. 어떻게 내가 그 시절을 버텨냈는지 모르겠다. 같이 들이대는 성격이 아니라 유치원에서 운 적도 많았고 아니면 나보다 덩치 큰 친구가 내편을 들어주면 그거에 고마워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렀던 거 같다. 맞받아쳤더라면 속이라도 후련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어린 나는 그런 용기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영원히 땅꼬마 일것 같던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일 년에 무려 10cm가 컸다. 그때 날 놀리던 애들보다 더 컸다. 지금은 키도 평균 몸무게도 평균이다. 아이는 영유아 검진 후 키와 몸무게가 모두 앞에서 2,3등이 나왔는데 소아과에선 엄마가 그랬으니 아마 아이도 늦게 클 것 같다고 한다.
키가 작은 건 아이의 문제라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다. 대신 끼니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해주고 계절마다 입맛 돋구는 한약을 지어주려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놀림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줄거다. 엄마처럼 당하고 속으로만 삭히지 않게 말이다.
누군가 놀리면 내가 나중엔 너보다 더 클 거거든. 나는 우리 아빠 닮아서 키 엄청 클 거야. (사실 아빠 키도 많이 크진 않다.)등의 말로 반격할 수 있게.
아이의 잠꼬대에 더 이상 잠을 못 자겠다며 뾰족하게 반응하지 말고 대신 한번 꼭 안아줘야겠다. 그리고 속삭여 줘야겠다.
"응 우리 딸이 제일 커.키가 숨어있어서 그래. 앞으로 더 많이 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