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태니컬 아트의 매력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마다 주민센터에서 보태니컬 아트를 배우고 있다.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이 어설픈 나라서 '나만 못하면 어쩌지. 미술은 알지도 못하는데' 걱정을 많이 했지만 19년도엔 뭐라도 배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일단 등록했다.
이름이 다소 생소한 보태니컬 아트는 사진 기술이 없던 시기에 식물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삽화로 시작하여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식물의 특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식물 세밀화로 자리 잡았다 한다. 사전 지식 없이 단순히 꽃이 좋아서, 그림으로 그리면 예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려면 며칠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았다. 먼저 스케치를 하고 색연필로 하나하나 채색해 나가는데 정성이 여간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정성은 곧 엉덩이의 힘과 인내였다. 몇 시간을 앉아 이것만 하고 있으니 엉덩이 통증은 물론 허리와 목도 아팠고 또 속에서 끓어오르는 미칠듯한(?) 답답함을 느끼기 일쑤였다. 스케치도 책 보고 그리는 거라 쉬울 줄 알았지만 미술은 과학이었다. 먼저 구도를 잡고 대략적인 각도도 맞춰야 했고 꽃도 한 번에 그리는 게 아니고 원 몇 개로 나눠 거기서 또 세부적으로 그려야 하고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물론 현재도 그렇다.
운 좋게도 칭찬도 듬뿍 해주시고 뭐든 세심하게 잘 알려주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차근차근 배운 결과 책에 있는 그림만 그리던 난 얼마 전 첫 창작을 완성했다.
12월 초 수업에서 혹시 핸드폰으로 꽃 사진 찍어놓은 거 없나요 물어보시길래 여러 장 보여드렸는데 그중 푸른빛을 띠는 보라색 꽃을 한번 그려보라며 추천해 주셨다. 꽃잎도 작고 아담한 사이즈길래 이건 그리기 쉽겠다 자신만만하게 스케치까진 해냈는데 막상 색을 입히려고 하니 막막했다. 선생님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우는 소리를 했는데 밝은 곳은 몇 번 색과 몇 번 색이 괜찮고 어두운 곳은 이러이러한 색깔을 섞으면 좋다고 알려주셔서 겨우겨우 칠해나갔다. 사진으로 안 보이는 세밀한 부분은 인터넷으로 찾으려고
- 혹시 꽃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 음. 수레국화 일 거예요.
정말 수레국화였다.
선생님은 내가 예쁘다며 찍은 들꽃의 이름도 정확히 알고 계셨다. 화려한 꽃뿐만 아니라 길에 흔히 피어있는 꽃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선생님이 멋진 그림 실력을 넘어서 그냥 참 좋은 사람 같이 느껴졌다.
1년간 배운 보태니컬 아트의 매력은 이런 것 같다. 화려한 색의 여러 꽃들도 멋지지만 길에 무심히 피어있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꽃을 요리저리 자세히 뜯어보고 그 이름도 찾아보고 그의 존재를 어여쁜 나만의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것.
사실 창작이라는 말도 거창할 정도의 서툰 첫 그림이지만 육아에 지쳐 있었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던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해 일궈낸 1년간의 노력이 오롯이 담겨 있어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질긴 꾸준함으로 더 많은 '수레국화'를 '꽃다지'를 '별꽃'을 피어내는 상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