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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Jan 29. 2020

1월의 네 번째 편지


안녕 우리 딸. 

설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어. 이번 설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듬뿍 받고 왔지? 용돈도 두둑이 받고 말이야.

엄마도 마음 편히 명절을 잘 보내고 와서 기분 좋아. 전처럼 할머니가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서 말 그대로 편하게 있다 온 것 같아. 

명절 전부터 보고 싶어 했던 고모(아빠의 사촌동생)를 만나서 딸도 기분 좋았지?

고모 주려고 색종이에 고모 얼굴 예쁘게 그려서 알록달록 색칠도 하고. 설날 아침에도 계속 고모 언제 오냐고 찾았지. 다른 어른들 보고는 새침하게 인사만 하더니 고모를 보자마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잘 놀아주는 다정한 고모 덕분에 엄마는 여유 있게 뒷정리하고 설거지도 하고 그랬네. 예전에 한참 낯가릴 땐 엄마한테만 매달려서 할머니를 도와드릴 수가 없었는데 다섯 살 언니 되더니 제법 의젓해졌어.


이번엔 설 전날 여덟 시도 안돼서 잠든 딸 덕분에 아빠 엄마는 데이트도 하고 왔어.(물론 새벽 세시반에 깨서 다섯 시 반에 잠들었지) 몇 달 만에 둘이 나가는 외출인지. 커피 한잔하고 왔을 뿐인데 행복했어. 

가끔은 주말에 단둘이 나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곱창에 맥주도 마시고 아빠가 좋아하는 치킨도 먹고 싶기도 하거든.

셋이 나가도 좋지만 그래도 어쩌다가 데이트하고 싶을 때가 있어. 이럴 땐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 근처였으면, 아니면 이모집이라도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그런데 바꿔 생각하면 우리가 붙어있을 시간이 얼마나 될까 싶어. 지금이야 셋이 항상 함께지만 언젠간 친구랑 노는 게 더 재밌어지고 남자 친구와 시간 보내느라 바빠지겠지. 그러니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어. 잘 안 먹는 딸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 진땀 빼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를 들어가는지 모르겠고, 꼭 가고 싶은 분위기 좋은 조용한 카페는 못 가지만. 

우리가 자주 가는 떠들썩한 카페, 쌀국숫집, 파스타집, 빵집, 편의점 이 익숙한 장소들이 나중엔 셋이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되겠지? 


요즘 우한 폐렴 때문에 한참 난리인데, 이 시기를 무사히 넘겼으면 좋겠어. 너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들

건강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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